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일본 작가는 다와다 요코다. 그는 두 언어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중적인 목소리의 이방인이다.
왜 그런가? 모국어인 일본어와 제2언어인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독일 문학계 최고 영예인 괴테 메달을 모두 받았으니 아시아와 유럽이 그의 문학적 터전이기도 하다. 여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달리 '여성'이란 정체성까지 더해지며 그는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와다의 '글자를 옮기는 사람'은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작품을 써온 그의 사상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단편에 가까운 얇은 소설인데 그의 웅숭깊은 철학이 깃들어 있다.
한 섬을 방문한 번역가 '나'에게 과제가 주어진다. 한 의사가 소유한 별장으로 온 '나'는 번역의 어려움 속에서 번역의 본질을 사유한다.
흔히 번역이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이를테면 모국어를 외국어로, 외국어를 모국어로 옮겨 적는 일로 이해돼왔다.
옮겨 적는 일은 '이동'을 전제 삼는다. 이곳에서의 언어로부터 저곳으로의 언어로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와다의 분신이라 표현해도 좋을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번역은 '변신'이다. 단어가 변신하고, 문장이 변신하고, 이야기가 변신한다. 변신이란 고정된 장소에서 이탈하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에서 전혀 다른 몸체를 구성한 뒤의 결과물에 가깝다. 하나의 단어가 적절한 다른 단어로 변화하고 그 변화가 쌓여 어딘가에 '도달'했을 때 번역은 이동이 아니라 변신이 된다는 것.
"어쩌면 번역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변신 같은. 단어가 변신하고 이야기가 변신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양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늘어선다."
언어의 변신 과정은 번역자 자신의 심연도 변화시킨다. 단어 하나하나의 낯선 감촉을 받아들인 뒤의 표정은 그 전과 같을 수 없으므로.
문학에는 '엑소포니(exophony)'란 개념이 있다.
모국어의 경계를 벗어난 작가들이 외국어로 문학을 하거나 그렇게 집필된 작품 자체를 엑소포니라 한다. '디아스포라 문학'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 다와다는 엑소포니의 전형이다.
그는 와세다대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뒤 시베리아열차를 타고 독일로 가서 대학원을 마친 뒤 시인으로 데뷔했는데, 그의 시집엔 일본어와 독일어가 나란하다. 이주가 하나의 시대정신이 돼버린 시대, 엑소포니 문학이 조명받는 이유다.
언어의 극단을 추구하는 작가인 다와다의 다른 책 '여행하는 말들'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울림이 크다.
"문학을 쓰는 건 귀에 들어오는 말을 이어 붙여서 계속 똑같이 쓰는 것과 반대다. 언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극한까지 가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