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9 06:00:00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1997년, 2002년, 2007년, 2012년, 12월의 시린 날 투표장 풍경이 떠오릅니다. 2017년 뜻하지 않게 따사로운 5월 선거를 치렀고, 봄날 투표는 202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2025년, 이번에는 6월의 여름 선거로 바뀌었습니다. 예정됐던 대통령 임기종료를 무려 2년이나 앞서 시행됩니다. 국민들의 불안, 경제의 침체, 대외 신뢰도의 추락은,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앞으로는 부디 우리나라 국정이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행여라도 분주한 가을에 투표소에 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기를 염원합니다. 오늘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말들의 어원과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대통령(大統領)’은 ‘큰 대(大)’, ‘거느릴 통(統)’, ‘우두머리 령(領)’자로 이뤄진 말입니다. ‘으뜸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대통령의 영단어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라틴어 ‘praesidere’에서 왔습니다. ‘Prae’는 ‘앞에(pre)’를, ‘sedere’는 ‘앉다’를 뜻합니다. ‘(회의 석상의) 앞에 앉은 사람’, 즉 ‘대표 지도자’입니다. 대학교의 총장과 기업이나 단체의 총수도 ‘프레지던트’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지도자나 대표자를 뽑는 행사를 ‘선거(選擧: 고를 선, 올릴 거)’라고 부릅니다. 선거 ‘일렉션(election)’은 라틴어로 선택을 뜻하는 ‘electionem’에서 출발했습니다. ‘밖으로’란 의미의 ‘ex’와 ‘선택하다’를 뜻하는 ‘legere’가 모인 말입니다. 이 ‘leger’는 인도유럽조어(Proto Indo European)로 ‘모으다/쌓다’란 뜻인 ‘leg’에서 유래했습니다.
‘유권자(有權者: 가질 유, 힘 권, 사람 자)’는 ‘선거에 참여하는 권리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어로 ‘보터(voter)’이고, ‘투표하다’라는 동사는 ‘보트(vote)’입니다. 네, ‘캐스팅 보트(casting vote)’의 그 ‘보트(vote)’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맹세, 엄숙한 서약, 헌신’을 뜻하는 라틴어 ‘votum’에서 왔습니다. ‘캐스팅 보트’란 본래 의회에서 의안에 대한 가결표와 부결표가 동수일 때, 의장이 행사하는 결정투표를 뜻했습니다. 의장 결정투표를 시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양쪽 의견이 팽팽할 때 승패를 결정짓는 ‘제3당의 투표’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유권자에게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선거에 나서는 인물을 ‘후보자(候補者: 기다릴 후, 채울 보, 사람 자)’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후보라고 부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관리를 등용하기 전, 미리 적정인물을 선정해 둬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후보자는 스포츠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대기 선수’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대기선수인 ‘후보’는 출전을 기다리다 보니 엉덩이로 벤치를 데워서 ‘벤치워머(benchwarmer)’라고 부르는 반면, 선거에서의 후보는 정당과 단체를 대표하는 최강 선수입니다.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만, 스포츠의 후보선수와 대통령 후보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후보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캔디더트candidate)’는 ‘직위를 열망하는 사람’이란 뜻의 라틴어 ‘candidatus’에서 유래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정치 후보자들이 ‘빛나는/하얀(candidus) 예복’을 입어서 붙은 말입니다. 비뇨기과 질병인 ‘칸디다증(candidiasis)’도 환부에 하얀색 막이 생겨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후보자는 유권자들에게 당선 시 실현할 정책이나 목표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유권자와의 공적 약속을 ‘공약(公約: 널리 공, 약속 약)’이라고 부릅니다. 지켜지지 않는 ‘공허(空虛: 빌 공, 빌 허)한 약속’이라는 냉소도 있지만, 희망찬 약속은 그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바르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공약의 영어단어 ‘플렛지(pledge)’는 ‘책임을 지다’를 뜻하는 서부 게르만어 ‘pleg-‘에서 왔습니다. 약속을 뜻하는 다른 말 ‘promise’도 ‘앞으로(pro), 보내다(mittere)’, ‘앞으로 실현될 것을 보증하여 내놓은 말’입니다. 공약은 꼭 지켜야 할 공중과의 약속이니, 신중하고 실현 가능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후보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공약을 가지고 ‘유세(遊說)’를 합니다. ‘떠돌 유(遊)’자와 ‘달랠 세(說)’자로 이뤄진 말로,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활동을 말합니다. 유세의 영어 ‘캠페인(campaign)’은 ‘벌판’을 뜻하는 라틴어 ‘campus’에서 왔습니다. 고대의 군대는 겨울을 주둔지에서 보내고, 여름에는 전투를 찾아 ‘개방된 벌판’으로 나섰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속적 공격 작전’을 ‘캠페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캠페인에서 공을 쌓은 용맹한 전사 ‘챔피언(champion)’도 ‘캠퍼스’ 출신입니다. 대학의 넓은 뜰도 캠퍼스라고 부르고, 파리를 떠올리면 흐르는 노래 ‘샹젤리제(Les Champs Elysees)’는 ‘낙원의 벌판’을 뜻합니다. 벌판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나네요.
자, 이제 대표 지도자를 뽑는 선거일이 옵니다.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들은 원하는 후보자에게 선거권을 담은 증표를 던집니다. 투표(投票: 던질 투, 증표 표)를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투표하다’의 영어단어 ‘보트(vote)’는 ‘신에게 바치는 맹세’와 ‘엄숙한 서약’을 뜻하는 라틴어 ‘votum’에서 왔다고 기억해 봅니다. 냉철하고 진지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투표함을 열어 표를 확인하는 ‘개표(開票: 열 개, 증표 표)’를 마치면, 더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當選人: 맡을 당, 고를 선, 사람 인/the elected)’이 확정됩니다. 복잡하고 긴 절차를 거쳐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만큼, 그 약속을 실현하는 데도 정직한 땀과 열정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만세!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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