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8 19:18:57
계획형(J) 성향의 남자와 무계획형(P) 여자가 런웨이와 같은 직사각형의 긴 무대 양끝에 서있다. 둘은 만나면 가까워졌다가 이내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쉽사리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두 인물의 심리적 대결을 보고 있으면 이 무대는 런웨이라기보다는 펜싱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경기와 같다.
연극 ‘랑데부’는 로켓 개발에 매진하는 과학자 태섭과 춤을 통해 자유를 찾는 짜장면집 딸 지희의 특별한 만남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와 감정을 마주하고 서로를 보듬는다. 프랑스 단어인 랑데부는 두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 하는 남녀 간의 밀회,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만나는 일을 가리킨다. 이 연극에 꼭 맞는 단어인 셈이다.
이 작품은 2인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위에는 오직 두 배우의 연기력만 남는다. 배우들은 100분간 중간 퇴장 없이 표정, 눈빛, 움직임으로 깊고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한다. 심사숙고 끝에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태섭 역은 박성웅·박건형·최민호가 맡고, 지희 역은 이수경·범도하·김하리가 연기한다.
지희는 아픈 과거 때문에 강박증을 앓고 있는 태섭을 춤을 통해 치유해준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추는 춤은 서로의 몸이 엮이면서 하나가 된다. 춤은 에로틱하기보다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대사 없이도 몸짓과 움직임, 눈빛만으로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연기와 춤 모두 두 배우 간의 호흡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6명의 배우가 고정된 세 페어(짝)로 무대에 오른다. 박성웅·이수경, 박건형·범도하, 최민호·김하리로 구성된 세 페어는 같은 듯 다른 해석과 분위기를 각각 만든다.
연극 ‘랑데부’에서는 관객도 중요한 요소다. 객석이 무대 양옆에 놓여 관객은 다른 관객을 마주보게 된다. 배우는 관객에게 종종 말을 걸고, 관객에게 작은 배역이 주여지기도 한다. 배우는 다양한 감정을 방백(傍白)으로 풀어내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의 속마음을 엿보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정반대 성향의 남녀이지만 태섭은 지희의 아버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연결고리는 이들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하지는 못한다. 지희는 아버지를 떠나 자신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났지만 가장 아팠던 장소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오는 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