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랩 부산 2025' 개막 세계 25개국 120명 작가 참여 전시·아트페어·포럼 엮어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품 소개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정원엔 LED 스크린패널 40여개 도열 도모헌엔 실험 영상 19개 펼쳐
LED 스크린패널 40여 개가 설치된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정원의 전시 '디지털 서브컬처'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올봄 부산은 도시 전체가 '디지털 미디어 아트'로 물들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란 디지털 기술로 창조된 예술을 의미하는데, 이때 디지털 기술은 예술을 시행하고 충족시키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예술적 언어'란 자격을 얻는다.
25개국에서 모인 예술가 120명이 부산 시내 곳곳에서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품을 전위적으로 펼치는 '루프 랩 부산(Loop Lab Busan)'이 최근 개막했다.
'루프 랩 부산'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루프 바르셀로나'를 본뜬 행사다. 전시, 포럼, 아트페어를 하나의 고리(loop)처럼 연결해 도시 전체를 엮었고, 이를 위해 루프 랩 부산은 루프 바르셀로나 측과 협력했다. 루프 랩 부산 현장을 지난 25일 다녀왔다.
눈길을 끄는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정원에서 열리는 디지털 미디어 페스티벌 '디지털 서브컬처: 모두가 창조자'다.
베르나르 브네, 데니스 오펜하임 등 세계적 조각가들의 기존 작품 사이로, 성인 남성의 키에 달하는 LED 스크린패널 40여 개가 야외정원을 꽉 채웠다. 이 스크린 패널에서 각각 재생 중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28개국 작가들의 창작물인데, 기존 디지털 미디어 아트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가 최소 10만명, 많게는 300만명에 달하는 크리에이터의 작품들도 포함됐다.
현장에서 만난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인에게 본인의 창작물을 전파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 픽사 수준의 영상을 1인의 크리에이터가 만들어내는 시대"라며 "모두가 기술 학습과 노동 자본력에서 해방되면서 이들은 모두가 창작자의 자격을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생비자(生費者·prosumer)'로서 주목받는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LED 스크린패널의 주인 가운데 한 명인 중국 크리에이터 루이 후앙은 SNS 플랫폼 팔로어가 300만명에 달하는 유명인이다. 이번에 전시된 루이 후앙의 작품은 '오자(OAZA)'로 거대한 항성이나 에너지원처럼 보이는 우주 구조물을 형상화했다. 압도적인 부피감이 경외감으로 전환되는 매력이 있다.
로댕의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레고와 비슷한 큐빅 형태로 형상화한 셰우메르 피에르의 '나의 목소리', 인스타그램 팔로어 19만명인 루카스 자노트의 귀여운 영상이미지 '큰 것이 작은 것 먹기'도 유독 눈길을 끈다. 서 관장은 "이제 예술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은 사라지고 있다"며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뒤섞이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루프 랩 부산'은 부산 시내 25개 공간에서 열리는데,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정원에 이어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할 전시는 옛 부산시장 관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광안리의 '도모헌'이다. 도모헌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지금 이곳에서 아시아 19인의 영상작업을 한데 모은 '무빙 온 아시아'가 열리고 있다.
암리타 헤피의 '연막 속의 성서'에선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우측을 보면서 손과 다리를 뻗으며 공간을 응시하는데, 화면에 비친 그녀의 신체는 자꾸만 일그러진다. 몽환적인 이미지는 기계를 통한 실험적인 의지 속에서 만들어졌다.
게리 젝시 장의 '위상동색', 유스케 사사키의 '시네필리아 나우'도 주목을 요한다. 특히 유스케 사사키 작품에서 '연극엔 사람이 있지만 영화는 빛과 그림자뿐이다. 그곳(영화)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내용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본질을 압축해낸다.
루프 랩 부산 아트페어는 그랜드조선부산 13층에서 열렸다. 26일 폐막한 이 아트페어는 독특하게도 거대한 전시장이 아닌 '호텔 속 객실'에서 열린다. 객실로 가득한 호텔 한 층을 하나의 아트페어 전시장으로 설정하고, 각 객실을 아트페어 부스로 활용했다.
에스더쉬퍼, 갤러리 파오,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 징크 등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루프 랩 부산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각 객실에 들어서면 기존 TV나 새로 설치한 대형 TV에서 작가들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영상이 나온다. 호텔 객실 내 의자나 침대에 편안히 걸터앉아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