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추억담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 살던 이모님은 한국에 올 때마다 냉동 LA갈비를 수하물로 가져오셨다. 한국 가족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 바로 LA갈비였고,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미국식 갈비'는 밥상에 오른 귀하고 특별한 별미였다. 얇게 잘라 양념을 한 갈비를 숯불에 구워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연신 젓가락을 놀렸다. 그때의 신기하고도 풍요로운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고 한다.
LA갈비는 교민 사회의 지혜에서 태어난 음식이다. 당시 미국에서 갈비는 지방과 뼈가 많아 비선호 부위였고, 덩어리째 저가에 팔렸다. 한국식 조리에 맞게 다듬어줄 정육점도 드물었다. 이에 교민들은 고기를 결 반대 방향으로 뼈째 얇게 잘라내는 방식을 고안했다. 낯선 모양이었지만 간장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구우면 고향의 맛이 떠올랐다. 그렇게 탄생한 LA갈비는 곧 이민 사회의 상징이 되었고, 명절이나 모임에 빠지지 않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흘러 LA갈비는 더 이상 이민 간 친척이 들여오는 '귀한 음식'이 아니라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전통 갈비찜이 무게감 있는 잔치 음식이라면, LA갈비는 한층 친근한 명절 음식이 되었다. 송편과 전, 나물 옆에 구워낸 갈비 한 접시가 놓이면 모임의 풍경은 더 푸근해진다.
LA갈비가 흔해 보여도, 그 원재료는 결코 흔치 않다. 소 한 마리에서 차지하는 갈비류 비중은 10% 남짓이다. 그중 LA갈비의 원료인 꽃갈비는 다시 10% 정도, 무게로는 고작 3㎏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희소성이 오늘날에는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동시에 명절 음식으로서 상징적 가치를 지켜주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수입 소고기 대중화 1세대에 속한다. 1990년대 후반 미국산 LA갈비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이 우려돼 공급처 다변화에 전력투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공급망이 넓어졌다. 하지만 한국인의 갈비 사랑이 전 세계 K푸드 열풍과 맞물리며 최근에는 가격이 오히려 크게 올랐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최고급 꽃갈비가 ㎏당 2달러 중후반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5달러에 육박한다. 한때는 값싸고 푸짐했던 음식이 이제는 명절 밥상을 장식하는 고급 메뉴가 된 것이다. 희소한 부위가 주는 가치, 그리고 시대의 변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제 곧 추석이다. 예로부터 추석은 가족이 모여 풍성한 수확을 나누며 서로를 돌보고 안녕을 기원하는 시간이었다. 올해도 많은 가정에서 LA갈비가 구워질 것이다. 달콤 짭짤한 양념 향이 집 안 가득 퍼지면, 세대와 문화를 넘어 이어지는 가족애가 더욱 깊어질 듯하다. LA갈비가 더해진 추석 풍경은 한국인의 삶이 세계와 연결되고, 또 그것을 자기 문화로 소화해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작은 음식 하나가 국경을 넘어 문화를 잇는 다리가 되고,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풍성한 한가위, 갈비 한 점의 따뜻한 맛으로 우리의 삶도 늘 든든하고 넉넉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