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김정은도 시진핑도 일제히 신냉전 알리는 행보 탈냉전 관성 여전한 한국만 통일 대비 외치며 사업 벌여 盧 북방정책 후 접경개발은 그 시대에서나 최선의 선택 北 "한민족 인식 없다" 외쳐도 아직도 평화 교류 단꿈 꾸나
2025년 9월 2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나토 영공 침범을 비판했다. 그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온 그였기에 이번 연설은 전 세계에 놀라움을 주었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낙관적인 인식을 갖고 2기 집권을 시작한 그가 8개월 만에 그런 인식을 포기하게 된 과정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탈냉전이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환상을 품었다가 신냉전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 전 세계인의 모습을 압축한 것처럼 보인다.
탈냉전은 소비에트 연방이 1991년 12월 26일 붕괴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1978년 덩샤오핑이 주석에 취임하고 1979년 미국과 수교하면서 탈냉전의 징후가 나타났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면서 잠시 소강 상태에 빠졌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며 다시 한 번 세계 경제 질서 속에 편입되는 길을 택했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다(1988~1993).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에 탈냉전이 시작된 것은 한국을 위해서나 그 자신에게나 행운이었다. 쿠데타 세력이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한 세계관을 가졌고, 무엇보다 1987년의 선거를 통해 집권 정당성을 획득한 그가 대통령이었던 덕분에 한국은 북방외교라는 이름으로 탈냉전의 파도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한편으로 만약 탈냉전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유연한 세계관의 소유자인 그라도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큰 제약이 있었을 터다.
한국에서 탈냉전은 북방외교라는 이름으로 옛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역을 가능하게 했다. 도시와 국토라는 관점에서는 1990년의 고양 일산신도시, 1996년의 인천공항, 2000년의 파주 운정신도시, 2004년의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2006년의 김포 한강신도시와 양주신도시 등 한국 서북부가 열렸다. 특히 LG디스플레이가 경상북도 구미가 아닌 북한에서 7㎞ 떨어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이 탈냉전을 이용해서 옛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역하고, 중국의 성장에 함께하여 이익을 취해온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탈냉전이 끝나고 신냉전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탈냉전 시대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건사업을 벌일 때 남북 화해와 통일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거론하는 것도 탈냉전의 습관이다. 포천 남부에서 끝나는 세종포천고속도로를 철원으로 연장시키자는 주장이 있다. 통일이 되었을 때 원산까지 도로를 연장할 수 있도록 대비하자는 게 명분이다. 또 인천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업도 서해 남북평화도로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통일이든 화해든 한국만 추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카운터파트가 되는 북한의 의향도 중요하다. 그런 북한은 2024년에 대한민국이 자신들의 주적이라고 선언했다. "북한과 한국이 동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 인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한국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유엔에서 발언하기도 했다. 한국과 아무런 일도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 이상 명확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는 시진핑·푸틴·김정은이 나란히 서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 있던 자리다. 한국 대통령에서 북한 지도자로 변화한 것 역시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세계 질서가 바뀌었음을 상징한다.
러시아는 최근 북한·중국·인도·이란이 러시아와 함께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축에 자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일어난 전쟁에 파병하고, 그 대가로 외화와 군사기술 그리고 정권 안정을 보장받은 것은 물론이다.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의 말처럼 지금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생각하기에 가장 안 좋은 시기"다.
여전히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환서해시대·환동해시대·접경지역 개발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당과 야당,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이들은 여전히 노태우 시대의 그림자 아래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