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미 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과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변곡점에 진입했다. 미국과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최고급 인재를 동원해 기술 초격차를 벌리고 있으며, 이 경쟁은 국가 역량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단순하다. '따라갈 것인가, 앞서갈 것인가, 혹은 뒤처질 것인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은 AI 자립뿐이다.
여기서 제안하는 핵심 수단이 지방 분권형 '열린 두뇌 연구소(Open Brain Lab)'다. 첫째, 새 건물을 짓느라 예산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이후 공실로 남은 공공청사와 상업용 빌딩을 임차하여 AI 연구·창업 거점으로 즉시 전환하면 된다. 둘째, 연구소는 지방정부·거점대학·지역 기업이 3자 컨소시엄으로 운영한다. 대학은 기초 연구를, 연구소는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제품화를, 기업은 시장 피드백과 투자를 담당해 '연구→개발→시장'의 순환을 지역 안에서 완결한다. 셋째, 연구소에는 데이터 활용과 인허가를 신속히 시험할 수 있는 AI 규제 샌드박스 지위를 부여해 초기 기술 검증 비용을 대폭 줄인다. 넷째, 지방정부는 자체 공공조달 예산을 활용해 연구소 성과물에 조기 수요를 제공한다. 첫 매출이 보장되면 벤처캐피털·지방 은행·연기금이 후속 투자에 참여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인재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다.
중앙정부는 '컨트롤타워'로서 정의와 표준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가 AI 로드맵, 데이터·윤리 기준, 안전 규정을 일관되게 제공하고, 성과가 검증된 연구소를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편입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반면 지방정부는 실행과 실험의 장을 자처해야 한다. 농식품·조선·관광 등 지역 특화 산업에 AI를 먼저 접목해 성공 사례를 쌓고, 그 성과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면 된다. 기업에도 과제가 남는다. 주력 품목의 수명 주기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AI 기반 신제품·서비스 전환 로드맵을 연구소와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보텀투톱(Bottom-to-Top) 접근은 중앙집권형 정책이 간과한 다양성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한다. 지역마다 실패 사례를 통해 얻은 교훈은 공개 플랫폼으로 공유해 전체 비용을 낮춘다. 무엇보다도 이 모델은 '파격적 연봉' 대신 도전의 기회와 사회적 명예로 인재를 끌어들인다. 실패해도 경력으로 인정받고, 성공하면 지역 경제를 살린 '로컬 챔피언'이 되는 제도가 갖춰진다면 국내외 S급 인재는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다.
정책 입안자들은 더 이상 '지원 규모'나 '행사 횟수'로 성과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첨단 기술은 속도가 생명이며, 속도는 규제·자본·인재가 한자리에서 만나야 나온다. 열린 두뇌 연구소 모델은 이를 가장 낮은 비용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기술 패권 시대에 뒤처지면 돌이킬 여유가 없다. 국가·지방·기업·대학이 각자의 '실패 비용'을 공유하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생태계를 지금 바로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기술 자립과 경제 재도약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며, 새 정부가 반드시 선택해야 할 단 하나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