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에 위치한 큰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수도권 공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이직할 때, 경력직이 신입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봉 손해까지 감수하고 상경하는 것은 뜻밖이었다. 싱글이 대부분이니 자녀 교육은 이유가 아니겠고, 젊으니까 병원 접근성 때문도 아니다. 인터넷 구매가 대세이므로 쇼핑 때문도 아닐 것이다.
MZ들이 말하는 수도권으로의 이직 이유는 문화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많았다. K팝 가수의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고, 주말에는 다양한 전시를 즐기거나 분위기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들 했다. 소득 1만달러 시대에 태어나 2만달러 시대에 자라난 세대다웠다. 질 좋은 교육, 의료, 쇼핑, 문화에 대한 접근은 기본권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값 상승에는 공간의 양극화도 한몫을 한다. 수도권과 지역주민들의 건강수명 격차가 15년 이상이라는 보고도 있다. 인구 30만명 미만의 도시구매력으로는 대형 병원이나 백화점을 유치하기 힘들다. 수준 높은 전시나 톱가수의 공연도 쉽지 않다.
작년에 출생아 수가 100명 이하인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52곳이었다. 5년 전 27곳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전체 기초 지자체의 약 20%에 해당된다. 89개 지자체는 인구 감소지역이었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소멸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전국의 기초 지자체들은 대체로 수백 년간 거주지로서 작동해 온 곳으로, 농경사회 때부터 형성돼 왔다. 논밭을 끼고 생겨난 마을에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이 들어오고 인구가 늘었다.
우리는 작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초과하는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했는데, 비수도권 지자체 중에는 이 비율이 40%가 넘는 곳도 많다. 산업 구조도 급변하고 있다. 1950년대 60%를 차지하던 농어업 인구는 이제 5% 미만이다. 서비스업 종사 인구는 75%에 육박하며, 제조업 종사자 수는 25% 이하에서 계속 줄고 있다.
인구와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는데, 30여 년 전에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면서 확정했던 226개 기초 지자체 수는 지금까지 변동이 없다. 외형은 그대로인 채로 소멸을 기다리기보다는 도시 공간의 구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수십 개의 지자체가 맥없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226개가 압축되고 통합되면서 재구조화를 해야 할 때다.
행정구역 개편도 함께 가야 할 텐데, 몇 개 도시의 행정 통합을 메가시티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공간의 구조를 콤팩트하게 바꿔줘야 할 것이다. 인구는 몇 만 명인데, 면적은 서울보다 넓은 군(郡)들도 있다. 흩어져 있는 주택들을 읍내로 올 수 있게 유도하고, 주요 시설도 한곳에 모은 뒤, 읍 단위의 소도시들은 합쳐야 할 것이다. 당연히 도시 구조가 변하고 압축은 필수적이다.
공간 밀도가 높아지면 도시의 관리 비용도 절감된다. 공간과 인구가 합쳐지고 압축된 도시에는 백화점도, 대형 병원도 들어오게 된다.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가 오고 있다. 인구와 산업이 변하면 도시도 함께 변하는 게 맞는다. 도시 구조를 바꾸고 압축해 시대 상황에 맞는 도시로의 변신을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