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명군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생안정과 산업진흥을 위한 개혁을 추진했고, 탕평을 통해 개혁세력의 국정참여 문호도 넓혔다. 그러나 그의 개인사는 잔혹했다. 왕이 될 운명이었던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했고, 목숨까지 위협했던 당파의 견제도 있었다. 이런 극적인 서사 때문에 정조의 일생은 항상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영화는 조각미남 배우 현빈이 정조 역할을 맡았던 영화 '역린'이었다. 액션 신도 박진감이 넘쳤지만 기억에 남는 대목은 정조가 신하들과 경연을 놓고 기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중용 23장을 현대적으로 의역한 영화 대사가 등장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예기 중용 23번째 장이옵니다."
영화에서 궁중서책을 관리하는 내시가 이 구절을 막힘없이 읊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정조가 이 대목을 즐겨 읽고, 실천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목을 생각하면 나는 얼마 전 총장 취임식 행사 준비팀에 부탁했던 신청곡이 떠오른다. 조동화 시인의 시에 윤학준님의 작곡으로 만들어진 노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곡이다. 이미 잘 알려진 노래여서 다양한 버전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곡도 아름답고 가사도 좋은 이 노래를 취임식에서 합창으로 들을 수 있었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곡의 가사는 이렇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꽃을 피우고 너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온 세상 풀밭이 꽃밭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주변엔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문제의 원인을 남과 외부에 있다고 진단하고, 변화의 방향도 외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개혁과 혁신이 성공하려면 나뿐 아니라 남도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또 나부터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과연 개혁과 혁신이 성공할 수 있을까?
개혁과 혁신이 힘을 받으려면 그 내용도 정교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의 전달은 감정 호소나 읍소와 다르다. 나부터 최선을 다하고, 나부터 희생을 해야 개혁의 진정성은 공감을 얻는다. 이런 토대 위에 나와 내 조직의 혁신이 성공할 수 있다.
지금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가 격변의 시기라는 얘기가 들려 온다. 위기 돌파와 혁신의 성공을 위해 '나 하나 꽃 피어'가 담고 있는 뜻을 먼저 새겨봄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