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망했다고 좋아하는 사람 친구 성공을 깎아내리는 사람 모두 다 무의식속 열등감 발현 이런 관계 반복땐 거리두기를 감정 방치보단 마음평화 중요
독일 속담을 소개한다. 'Die reinste Freude ist die Schadenfreude.' 이는 '남의 불행 혹은 곤경을 볼 때 우리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의미다. '샤덴프로이데'라는 낯선 단어와 함께 '악마스러운 마음'을 살펴볼까 한다.
솔직히, 우리 다 한 번쯤 느껴봤을 거다. 잘나가던 동창이 망했다는 소식에 속으로 "헉, 꼴좋다!"고 한 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누군가 망신당하는 영상을 보며 킥킥거린 적. 길에서 꽈당 넘어진 사람을 위로해주려다 주책맞게(?) 웃음이 새어 나와 당황했던 찰나.
권선징악의 거룩한 기쁨이 아니라, '사악한 느낌을 얹은 쾌감'이 바로 샤덴프로이데다. 독일어 'Schaden(샤덴)'은 '손상', 'Freude(프로이데)'는 '기쁨'을 뜻한다.
독일인들은 불행을 보면 "Schade!(안됐다!)"라며 안타까워하지만, 샤덴프로이데는 "안됐네…. 근데 좀 고소하긴 해" 하는 이중 심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스쳐 가는 장난 같은 마음일지 몰라도,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최악의 본성!"이라며 독설을 날렸다. 심지어 "사이코패스 아니냐?"며 사회에서의 격리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 자라면서 한 번쯤 느껴봤을 이 감정, 정말 악마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그냥 인간다움의 한 조각일까? 정신분석적으로 샤덴프로이데는 무의식 속 열등감과 욕망에서 온다. 타인의 실패를 보며 "내 열등감이 풀렸다!"고 환호한다. 친구가 승진을 자랑할 때 내가 "흥, 곧 망할걸" 하는 건 열등감이 춤추는 순간이다.
반대로 내가 실수했을 때 친구의 눈빛이 반짝인다면, 친구의 '이드(본능)'가 내 실패로 열등감을 일시 해소한 결과일 수 있다. 초자아가 "그런 생각은 나쁘다!"며 죄책감을 던지니 우리는 감정을 최대한 숨기려 한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감정을 경멸하지만 그래도 다 없앨 수 없기에, 데일 카네기(인간관계론의 전설)는 일찌감치 이 샤덴프로이데를 피하는 비법을 알려줬다. '자신의 업적은 최소로 드러내고 겸손하라'고. 성공 자랑은 질투의 표적이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SNS 시대가 되면서 다들 "나 행복해!"하며 자신의 즐거운 순간, 화려한 휴가 사진, 맛집 인증샷을 뿌려댄다. 카네기의 조언은 뒤로 밀려났고,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라며 겸손마저 공격의 타깃이 될 지경이다. 기쁨을 무심코 공유했다가 질투의 화살에 당황하는 일도 잦다. 인간관계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단순한 놀부 심보로 처리하기엔 친구처럼 가까운 이에게서 이 샤덴프로이데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게 되면 사실 좀 무섭긴 하다. 내가 성공했다고 자랑했는데, 친구의 미소 뒤에 숨은 묘한 비꼼. 내가 실수했을 때 위로하는 말투 속 미세한 즐거움. 그 순간 "얘가… 내 불행을 즐기는 거 아냐?"하는 의심에 가슴이 철렁한다. 자칫 큰 상처로 넘어갈 수 있는 이때 샤덴프로이데는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감정임을 기억하며 침착하자. 친구의 묘한 반응은 악의라기보다 열등감이 튀어나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친구의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해주진 못해도 친한 관계라면 이를 기회로 삼아 어떤 힘든 일은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볼 순 있다. 진심 어린 소통에는 언제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법. 카네기의 조언을 따라 말을 먼저 많이 하기보다 "넌 최근에 뭐 재밌는 일 있었어?"라고 친구의 이야기를 끌어내며 비교에서 오는 자극을 줄이는 게 좋다. 단, 샤덴프로이데가 반복되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며 재점검하자.
깊은 질투와 냉소적 공격은 관계의 독이며 일방적으로 품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심결에 드러난 감정을 방치하느냐 하는 선택,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의 평화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