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확인은 귀찮고 힘든 과정 횡행하는 소문·괴담 많고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그만큼 진실은 더 소중해진다
어떤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기사였다.
재산 공개 자료의 한 줄이 단초였다. '어, 이거 재개발 구역 주소인데?'
후배 기자는 해당 날짜 구(區) 관내의 등기 수십 장을 모두 떼서 확인했다. 다른 기자는 현장으로 뛰어갔다.
'팩트가 확인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편집국장의 원칙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데스크로서 진땀이 났다. 다행히 매도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상세한 매매 과정도 들었다.
공적 자료, 등기, 현장 확인, 인터뷰까지 3중, 4중의 확인을 거친 후 밤 12시가 넘어 개판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팩트만 썼다. 재개발 지분 거래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다음 날부터 다른 신문·방송사의 추종 기사가 쏟아졌다.
그 고위 공직자는 '야당 소속의 정적이 언론에 정보를 흘려서 나온 기사'라고 주변에 하소연했다고 한다. 재산 공개 한 줄만으로 상세한 보도가 나왔으니 그런 추측을 할 만하다. 그러나 누가 던져준 정보는 없었다. 그날 새벽까지 기자들이 숨 가쁘게 일일이 확인한 것뿐이다.
기자들은 가끔 고통스러운 확인 과정을 거쳐 단 한두 줄의 팩트를 얻는 경험을 한다. 그때마다 팩트의 엄중함을 절감한다.
팩트의 엄중함은 언론사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유지되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더 절실하다.
요즘은 국가기관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건이다.
서영교 의원 등이 근거로 제시한 녹취록은 AI로 만든 것이다. 처음 방영했던 유튜브 측이 'AI 제작'은 물론,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라고 밝혔는데도 호도했다. 그리고 국회 법사위는 결국 청문회를 상정해 단독 의결했다.
국회의원은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이자 '1인 헌법기관'이다. 삼권분립이란 헌법원칙이 훼손될 수 있는 청문회를 AI로 각색한 풍문을 근거로 한다니.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점은 우려된다.
지난주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 매체에 확산됐다. 그러나 며칠 뒤 본인들이 부인하며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AI가 웨딩드레스와 반지 등 사진까지 그럴듯하게 만들어내 오해를 부추겼다. 누구나 유튜브 계정을 팔 수 있고, AI가 사실과 똑같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팩트를 호도하고 악용하는 사례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 국회의원들이 진심으로 녹취록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팩트를 확인하는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휘발성 있고 톡톡 튀는 발언에 능한 사람이 많다. 임기응변과 재치에 감탄한다.
그러나 입법, 사법 등 공적인 일에서 미래가 걸린 이슈를 두고 팩트보다 재치를 앞세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 대변인이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고 해서 놀랐다. 팩트는 없이 본인의 느낌을 국민 앞에 논평한 셈이다. 그 이후 한국의 명운이 걸린 관세협상은 타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팩트를 가려서 보도하는 언론은 줄고 있다. 정직한 말을 하는 정치인도, 옳은 판결을 하는 판사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들이 더 소중해진다.
소문과 조작이 난무할수록 진실을 말하면 더 눈에 띌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구별할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건 그들뿐이란 걸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