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9.14 21:00:00
휘청거리는 프랑스의 모습은 충격이다.
‘제조업 강국’ 혹은 ‘유럽의 맏형’이란 수식어가 붙던 나라다. 전쟁이나 대재앙이 아니면 흔들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스스로 재원을 탕진해 좌초 직전이다.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자’고 해법을 내도 반대하는 의회가 황당하다. 나라 망해도 세금은 빼먹겠다는 식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프랑스에서는 9개월 간격으로 예산을 긴축하겠다는 총리 두 명이 연속으로 불신임을 당했다. 3조3454억유로(약 5400조원)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113.9%로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빚이 큰 것은 결과다. 지금까지의 행태가 문제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확장재정을 펼치다 보니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국민들이 꾸준히 늘어났다. 지원을 줄이려니 당연히 반발이 심하다. 여기에 좌파 정치권은 물론, 극우 정치권까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인다. 고통을 분담하는 합의는 난망한 구조다.
사람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 정부 예산으로 처음 지원받을 때는 고맙다. 그러나 다음부터 그 지원금은 ‘권리’가 된다.
예산을 아껴 쓰자는 원칙에는 모두 공감한다. 그런데 ‘당신 지원금을 줄이자’면 사생결단 반발한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포퓰리즘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돈 많은 기업인과 자산가의 세금을 올리면 되는데, 왜 우리한테 주는 푼돈을 깎냐”고. 그렇게 편가르기를 한다.
재정은, 국민은 ‘내가 낸 돈’이라고, 취약계층은 ‘내가 받을 돈’이라고 각각 생각한다. 재정이 비대해질수록 ‘자기 돈’도 커지니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진다. 갈등을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다.
한국은 어떨까.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100조원 국채를 추가 발행해도 (국가)부채비율이 50%를 약간 넘어선다. OECD 국가 대부분 100%를 초과한다”며 “빌려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달러·유로·엔을 쓰는 기축통화국은 언제든 돈을 찍어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래서 100%의 부채비율도 감내한다.
한국은 다르다.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은 곧바로 외환위기로 흐른다. 이미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한국 부채비율은 IMF가 분류한 37개 선진국 중 비기축통화국 11국 평균보다 높다.
부모 세대가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 자녀 세대가 갚아야 한다. 당신이 100만원 지원금을 받으면, 자녀 이름으로 100만원 빚이 있는 통장을 개설했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는 5년간 국가채무를 660조원에서 1067조원까지 약 400조원 넘게 늘려놨다.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1인당 빚을 1300만원대에서 2000만원대로 크게 늘려놨다. 재정 측면에서 이재명정부의 가장 큰 적은 문재인정부다. 어려운 시기에 적극재정을 펼치려 해도 문정부가 과용해서 여력이 작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공공자원을 각 개인이 이익을 위해 소비하다가 결국 자원이 고갈되고, 모두 손해를 보는 딜레마다. 이를 막으려면 주인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답은 명확하다. 공유지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2030에게 주인의식을 물려주는 것이다.
주인을 늘려야 한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공유지를 지키고 후세대도 아낀다. 2030의 보수화 현상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 실컷 쓰자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7호 (2025.09.17~09.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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