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 머스크, 데이비드 색스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3인방 국방·가상화폐 등 영향력 막대 이젠 제3당 창당 '초읽기' 앞둬 기술이 미래를 지배하는 시대 실리콘밸리선 '권력'도 재정의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정부에 발을 들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최근 움직임은 단순한 로비를 넘어 권력 설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벤처 생태계에서 축적한 막대한 부와 명성, 그리고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원을 바탕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비전과 이익을 입법과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 그 중심에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데이비드 색스가 있다.
틸은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극우 성향 후보들에게 수천만 달러를 투입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을 도우며 '킹메이커'로 부상했다. 그가 창업한 데이터 분석 기업 팰런티어는 CIA의 투자 조직 인큐텔에서 자금을 받아 성장했고, 지금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의 핵심 분석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틸이 단지 자금력을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나아가 국가 안보의 핵심 인프라를 통해 정보 수집·분석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색스는 한 발 더 안으로 들어왔다. 실리콘밸리 내에서 인공지능(AI)과 가상화폐 분야의 영향력을 인정받은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 AI 및 가상화폐 '차르(Czar)'로 지명됐다. 색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술 정책 자문을 맡아 정책 수립 초기 단계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가상화폐와 관련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를 비판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산업 친화적 정책을 지지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국가 비축 자산으로 지정하는 등 규제 완화와 산업 활성화를 빠르게 추진했고, 가상화폐 시장은 강한 상승 모멘텀을 이어 가고 있다.
틸이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면, 머스크는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권을 향해 "정부는 낭비와 부패로 가득하다. 국민에게 자유를 돌려줄 도구가 필요하다"란 말과 함께 '아메리카당'을 창당했다. 과거 미국에서 제3당 설립이 쉽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스크의 이번 도전을 한낱 치기로 보기는 힘들다.
아메리카당은 전국적인 정당이 되려는 게 아니다. 머스크는 "상원 2~3석, 하원 8~10석을 확보하면 된다. 의회를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내 생각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판을 흔들어 자기 생각을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대중의 표심을 설득하기보다는, 특정 지역의 핵심 지지층을 공략해 최소한의 의석으로 의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이는 기술 스타트업이 빠른 실행과 핵심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는 방식과 닮았다. 트위터를 인수해 여론 형성에 개입하고, 테슬라가 고급 전기차로 시작해 충성 고객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했던 전략처럼 말이다.
기술은 중립적인 도구처럼 보이지만 특정 권력이 이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순간, 그 자체로 강력한 정치적 도구가 된다. 머스크와 틸, 색스는 혁신가에서 권력의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법률을 제안하고 통과시키며 여론을 유도하고, 공공 정책의 청사진을 그리려 한다.
시민의 위임 없이, 투표 없이도 막대한 자본과 알고리즘, 데이터만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행보는 기존 민주주의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기술이 미래를 지배하는 시대, 실리콘밸리는 권력의 정의마저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