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7.11 14:48:21
(11) 지위가 높아질수록 처지는 입꼬리
어릴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거울뉴런의 작동은 남자의 얼굴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우선 입꼬리가 처집니다. 이유는 볼 근육, 더 정확히는 ‘입꼬리내림근’에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왜 볼에 힘을 주는 걸까요? 안 웃으려는 겁니다.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먼저 웃으면 ‘창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황당한 생각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명함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기 전에는 표정이 비슷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듯한 예의 바른 표정이지요. 그런데 명함을 주고받은 후에는 둘의 표정이 사뭇 달라집니다. 서로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한 후,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쪽이 먼저 웃습니다. 높은 사람의 입꼬리는 살짝 내려갑니다. 남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절대 먼저 웃지 않습니다. 실제 연구 결과도 그렇습니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의 심리학과 연구팀이 사회적 권력이 표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자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 그룹에는 ‘권력을 가진 리더’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지시를 받는 사람’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러고는 참가자들 얼굴 근육 반응을 측정했습니다.
거울뉴런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진 표정을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타인의 표정에 반응하는 정도가 훨씬 약했습니다. 반면 권력이 없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상대방 표정을 더 많이 흉내 냈습니다. 권력관계에서 낮은 사람들의 거울뉴런이 훨씬 더 잘 작동한다는 이야기지요. 권력관계가 제거된 일반적인 상황에서 누가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질까요?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은퇴하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겁니다.
놀라운 신생아의 모방 능력
1992년 라촐라티 교수팀의 거울뉴런 발견 이전에도, 인간의 모방 능력은 ‘생득적’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 발달심리학 담당 교수였던 앤드루 멜초프와 M. 키스 무어의 논문입니다. 멜초프와 키스 무어는 생후 2~3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들이 성인의 얼굴 표정을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모방 능력이 후천적 학습이 아니라 선천적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모방 능력이 선천적 능력이라면 ‘인간은 날 때부터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연구팀은 아기들의 평소 표정을 비디오로 촬영한 후, 아기 앞에 성인이 앉아 네 가지 표정을 반복해서 보여주게 했습니다. 혀 내밀기, 입 벌리기, 입술 오므리기, 그리고 손가락 움직이기. 그 후 녹화 테이프를 실험자뿐만 아니라 실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분석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녹화 테이프 관찰자들은 신생아들이 성인의 표정과 동작을 정확하게 흉내 낸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아기의 반응이 우연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는 자극에 정확히 반응했다는 것이지요. 이 연구 결과는 거울뉴런이 발견될 때까지 많은 논란이 됐습니다. 그만큼 신생아의 선천적 모방 능력은 심리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생물학적 증거가 됩니다. 멜초프와 무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생후 12일에서 21일 사이 영아는 얼굴 표정과 손동작을 모두 모방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조건 형성이나 선천적 방출 기제(innate releasing mechanisms)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모방은 신생아가 자기 자신의 보이지 않는 행동을, 타인이 수행하는 제스처와 동일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선천적 방출 기제란 특정 자극이 주어졌을 때, 유전적으로 설계된 본능적 반응이 자동으로 ‘방출’되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멜초프와 무어의 주장은 신생아의 모방 행동이 단순한 반사 이상의 것으로, ‘타인의 행동을 인식하고 자기 행동과 연결 짓는 인지적 처리’라는 것입니다.
장난감은 왜 세상의 축소판일까요?
스웨덴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는 1758년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제10판에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명명했습니다. ‘호모(Homo)’는 라틴어로 ‘사람’, 즉 ‘인간’을 뜻하고, ‘사피엔스(sapiens)’는 ‘현명한’ ‘지혜로운’이라는 뜻입니다. 린네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을 ‘인지 능력’, 즉 ‘사고력’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 후로 인간을 파악하는 철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호모(homo)’ 명칭이 쏟아졌습니다.
문화심리학자인 내게 인간을 가장 잘 특징짓는 명칭은 ‘호모 이미탄스(Homo imitans)’, 즉 ‘흉내 내는 인간’입니다. 앞서 설명한 신생아의 모방 능력을 처음 소개한 앤드루 멜초프가 1988년에 처음 제시한 용어입니다. 모방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간을 표현하는 다른 ‘호모’ 개념들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방 능력은 타인의 행동, 표정뿐만 아니라 의도와 계획까지 모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창조력은 바로 이 모방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학자들은 인간의 ‘창조적 모방 능력’을 ‘미메시스(mime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학자가 독일의 발터 벤야민입니다. 벤야민은 인간을 ‘세계를 감각적으로 모방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는 이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자연은 유사한 것을 생산한다. 우리는 단지 ‘미미크리(mimicry)’를 떠올리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데 최고 능력을 가진 존재는 인간이다. 인간이 가진 ‘유사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은 근본에 있어 비슷하게 되려는, 그리고 비슷하게 행동하려는 강력한 충동의 흔적일 뿐이다.”
‘의태(擬態)’로 번역되는 ‘미미크리’란 어떤 생물이 자신을 다른 생물이나 환경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흉내 내는 능력, 즉 ‘미메시스’는 이러한 생물학적 현상을 뛰어넘습니다. 외적 현상을 모방하는 미미크리는 생물체를 세상과 연결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미메시스는 세상을 내면화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기억, 서술, 소통 능력이 확장됩니다.
참고로 ‘미메시스’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예술은 현실의 모방이고,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므로 예술은 이차적 모방이라고 봤습니다. 그 뒤를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미메시스를 인간의 본질적 능력으로 설명합니다. 예술은 인간의 행동과 감정, 삶의 보편성을 표현하는 가장 정제된 형태의 미메시스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장난감은 외적 대상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축소한 모방물이 대부분입니다. 자동차, 동물, 아기 등. 왜일까요? 아기들이 주변 세계를 흉내 내며 그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작동하는 것은 ‘미미크리’입니다. 아기는 자동차를 굴리며 ‘부릉부릉’ 소리를 냅니다. 경찰차는 ‘삐뽀 삐뽀’합니다. 아이는 장난감의 움직임, 소리, 형태를 흉내 내며 세상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감정과 역할, 의도 등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아기 인형을 안고, “울지 마, 엄마가 있잖아”라고 속삭입니다. ‘미메시스’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때 보이는 아이의 행동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관계’ ‘감정’ ‘의도’를 내면화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레고 장난감은 자동차나 인형 같은 ‘감각적 유사성 기반의 장난감’이 지루할 때쯤 등장합니다. 아이는 레고 블록을 조립하며 내면의 상상 세계를 외부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창조적 재현(creative representation)’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창조의 본질
가장 형편없는 인간 건축가가 최고의 꿀벌보다 위대한 이유
1987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Freie Universitat Berlin)에 입학해서 처음 읽은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atal)’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앞에 두고 자본론을 읽는 기분은 참 묘했습니다. 당시 내 독어 실력으로는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거미는 직공처럼 실을 짜고, 꿀벌은 밀랍 구조 방을 만들면서 많은 인간 건축가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러나 가장 형편없는 인간 건축가조차 최고의 꿀벌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밀랍으로 방을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서 그 구조를 먼저 만든다는 것이다.”
당시 내게 이 문구가 놀라웠던 것은 매우 심리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실패한 혁명가였지만, 시대를 앞선 엄청난 심리학자였습니다. 심리학에서 수십 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논의될 개념들을 이미 그의 저작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형편없는 건축가조차도 머릿속에서 먼저 구조를 설계한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정신 활동을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부릅니다. 표상이란 ‘다시(re-)’+‘보여준다(presentation)’는 의미로, 어딘가에서 본 것을 마음속에 다시 떠올리는 작용을 뜻합니다. 사고의 본질이 곧 표상이라는 관점은 훗날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피아제는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능력의 기원을 ‘지연모방’에서 찾았습니다. 이렇게 피아제의 지연모방 개념과 마르크스의 형편없는 건축가 비유를 연관 지어 생각해냈을 때, 당시 내 지적 쾌감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연모방’과 ‘형편없는 건축가’가 편집되어 ‘창조적 표상능력’이라는 메타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에디톨로지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연모방이란 아이가 어떤 행동이나 대상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모방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연모방이 가능하려면 그 모방의 대상을 아이 마음속에 ‘모사(abbilden)’하고 그 이미지를 ‘저장(speichern)’해야만 합니다. 지연모방은 수동적 흉내 내기가 아니라, 외부 대상을 자기 내부의 표상체계로 재구성하여 자율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모방 능력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반사적 모방인 미미크리를 벗어나 기억, 상상, 의미 구성이 가능한 미메시스로의 이행이 가능해집니다. 창조적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방에서 창조로의 이행 과정’을 피아제는 지연모방을 거쳐 나타나기 시작하는 ‘상징놀이(Symbolisches Spiel)’에서 찾습니다. 피아제는 ‘지연모방’을 ‘조절(Akkommodation)’의 결과로, ‘상징놀이’를 ‘동화(Assimilation)’의 결과로 대비시켜 설명합니다. 조절은 새로운 자극에 맞게 인지도식을 수정하는 과정이며, 동화는 기존의 인지도식에 새로운 경험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세상에 맞추는 것이 조절이고, 세상을 내게 맞추는 것이 동화입니다. 인간은 이 같은 조절과 동화를 균형 있게 조절하면서 인지적 평형(Aquilibration)을 유지한다는 것이 피아제 인지발달 이론의 핵심입니다.
아, 이건 ‘창조의 본질’을 규명하는 엄청난 통찰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지연모방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재구성하게 된 아이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막대기를 총처럼 들고 뛰어다니거나, 인형에게 밥을 먹입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이런 행동은 단순한 모방이 아닙니다. 대상의 내적 표상을 변형 또는 편집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매우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기초이고,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한 상징적 미메시스입니다. 언어의 출현과 문화 형성은 이 같은 미메시스의 결과입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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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8호 (2025.07.16~07.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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