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2 09:00:00
오전 9시 30분, 1 대 1 보고 미팅. K전무는 책상에 앉으며 스스로 되뇌었다.
“오늘은 절대 중간에 말을 자르지 말자. 끝까지 들어주자.”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진행은 어때요?” P과장의 보고가 시작됐다.
5분, 10분… 배경 설명, 분위기 해석, 협업 부서의 반응, 이번 보고서를 위해 야근하며 애쓴 얘기까지… 말은 계속되는데,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두서가 없군. 어디서 잘라야 할까” vs “끝까지 들어줘야 하겠지” 건성으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지만 K상무의 마음은 이미 갈등으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많은 리더들이 ‘경청 의무감’과 현실의 압박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리더 여러분은 경청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Q. 회의나 보고 때 장광설을 늘어놓는 직원이 있다. 요즘은 회의 효율성이 강조돼 1시간 내 종료가 기본이다. 중언부언하는 직원을 보면 좌불안석이 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더는 끝까지 경청해야 하는 것인가?
김 코치: 경청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진정한 경청은 양적 경청보다 질적 경청이다. 오래 듣기보다 제대로 듣자. 인내 경청은 건성 경청으로 이어져 상대방에게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생산적 경청을 위해선 리더가 상황에 맞춰 4가지-편집자, 전환자, 설계자, 선언자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
첫째, 편집자 역할이다. 직원이 횡설수설하는 이유는 말의 구조가 없어서다. 중간에 끊는 대신 질문으로 구조를 제안해보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문장(세 줄)으로 정리하자면 어떤 의미일까요?” “핵심은 ○○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런 질문은 흐름을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압축하고 방향을 정리해줄 수 있다.
둘째, 설계자 역할이다. 보고나 회의 발언 구조 프레임을 전체에 공유한다. “오늘 보고는 3분 안에 핵심-원인-제안 순으로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P부장의 경우는 아예 ‘보고 탬플릿’을 만들어 공유했다. 이런 프레임이 있으면, 구성원은 자신의 생각을 리더가 수용할 수 있는 언어로 포장하게 된다. 보고 길이도 줄고 명확성이 향상된다.
셋째, 전환자 역할이다. 축지법 멘트를 활용해보자. 말을 끊는 대신 흐름을 빨리 진행하는 기술이다. “지금까지의 요점은 잘 이해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 말씀하신 핵심은 A이고, 그 안에서 고민하셨던 부분은 B군요.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제 실행 방안을 함께 이야기해볼까요?” 이런 멘트는 개입이 아니라 존중이다.
넷째는 (1 대 1 보고일 경우에) 선언자 역할이다. 시간 경계를 명확히 밝히라. “제가 지금부터 15분은 완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님 보고를 듣는 데 쓰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부터 들려주실래요?” 등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건성 경청은 중도에 말을 자르는 경청만큼이나 해롭다. 한 가지 더! 리더의 내면도 점검하자. “나는 왜 이 말을 끊고 싶은가?” 특정인, 특정 주제, 특정 상황 등에 몰려 있지 않은지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Q. 나는 경청하는데 구성원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건성으로 듣는 것으로 오해받을 때, 확실히 경청을 인지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 코치: 리더들의 대표적 실수 중 하나는 ‘조용한 경청’이다. 즉 듣고 있다는 신호를 상대에게 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 침묵은 경청의 깊이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종종 무관심으로 해석된다. 히브리대 조직심리학자인 아비 클루거와 이탈 자이델 교수팀은 238명의 조직 구성원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두 그룹에 리더와의 대화 경험을 제공하되, 한 그룹은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경청하는 리더, 다른 한 그룹은 묵묵히 듣기만 하는 리더와 대화하게 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적극적으로 반응한 리더는 “공감적이며 신뢰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고, 침묵한 리더는 ‘무관심하다’ ‘독단적인 리더다’라는 평을 받았다. 즉 ‘들었다는 증거’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증거 기반 경청의 세 가지 핵심 행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주의집중(Attention)이다. 지금 이 시간에 전적으로 ‘당신에게 있다’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상대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내 뇌를 경청 모드로 세팅하는 ‘관심의 신호’다. 다음으로 이해(Comprehension)다. 말의 표면을 넘어서, 상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감정이나 맥락을 읽는 기술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보다는, “그 일에서 어떤 감정이 드셨어요?”라는 질문이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끝으로 응답(Response)이다. 아무리 잘 들어도 반응이 없으면, 상대는 자신이 ‘공기 취급’당한다고 느끼기 쉽다. 리더는 들은 내용을 요약하거나 질문으로 정리함으로써, “나는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내 안에서 되새기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한다.
Q. 나는 구성원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자주 만들려고 한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실행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지난번 제안이 반복되곤 한다. 일각에선 ‘이벤트성 경청은 차라리 하지 마라’는 반응도 들려온다.
김 코치: 경청은 반영이 아니라, 반응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이야기를 실행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따라 리더십의 신뢰는 달라진다. 듣고 나서 아무런 조치도 못하면 희망 고문 이벤트가 되는 게 아닐까. 리더들의 경청 딜레마다. 2023년 미국 CCL(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의 조직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이 딜레마에 중요한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단순히 말을 잘 듣는 것(listening behavior)뿐 아니라, 직원의 의견을 듣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리더의 태도가 직원의 추가적인 목소리(voice) 표출, 신뢰, 조직 몰입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즉 맥락을 설명하란 이야기와 통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구조는 정확한 요약 → 정직한 설명 → 작지만 명확한 후속 반응 약속의 3단계이다.
① 요약 정리: “○○님의 말씀하신 핵심은 이러이러한 문제이며, 제안은 ○○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고민하시며 말씀하신 것이, 혹시 ‘해결이 더딘 조직 구조에 대한 답답함’이 맞을까요?”
② 제약 설명: “이 부분은 현재 조건상 실행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입니다.”
③ 후속 반응 설명: “이 대화의 결과를 다음 회의 때 공유하고,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메모해뒀으니 다음 업무 분배 때 참고하겠습니다.” 등이다.
이런 3단계 대화 설계는 큰 행사가 아니더라도 1 대 1 면담, 회의, 간담회 이후에도 적용 가능하다.
Q. 나는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일선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하는 편이다. 중간관리자가 함께하면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해 팀장을 배제하고 현장 경청을 진행했다. 덕분에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후 팀장들이 소외감과 불신을 표현하며 “왜 우리를 빼고 듣느냐”고 하거나 팀원들의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코치: 이 상황은 단순히 참석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에게는 심리적 안전을 제공했지만’ ‘중간관리자에게는 소외감을 유발한’ 딜레마다. 즉, 한쪽의 진심이 다른 쪽에겐 배제로 느껴지는 ‘신뢰의 균형’ 문제다. 리더는 때때로 특정 이해관계자 이야기를 별도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에서,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누구와 공유하느냐에 따라 경청의 진정성이 완성되거나 무너진다. 구성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1 대 1이나 소그룹에서 들었다면, 그다음은 중간관리자와 함께 그 이야기의 의미를 해석하고, 마지막으로는 팀 전체가 공유된 자리에서 보완 논의를 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5 (2025.06.25~07.0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