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생산 감축 정책 펼치던 일본 이상 기후로 작황 부진 이어져 관광객 늘어나고 쌀 사재기 기승 비축미 방출 시기 놓쳐 값 2배로 日과 쌀 시장·정책 유사한 한국 이웃나라 위기 타산지석 삼아야 시장 논리 맡기는 점은 배워볼만
쌀 시장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거의 닮았다. 두 나라 모두 쌀이 주식이다 보니 농업이 벼농사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가 빠르게 줄기 시작하자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쌀 생산 감축 정책을 편 것도 똑같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 초부터 꽤나 강제적인 쌀 생산 조정제를 도입해 성과를 냈고, 우리나라는 쌀을 다른 작목으로 전환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펴다가 올해는 아예 강제적인 생산면적 감축 대책까지 내놨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쌀값 폭등 현상을 겪고 있다. 작년 8월부터 본격 상승한 쌀값이 10개월째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쌀값이 평년 수준의 2배에 달할 지경이다. 사재기가 벌어지면서 마트 매대에서 쌀이 떨어지고 1인당 구입 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쌀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여행가방에 쌀을 채워 가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어쩌다 일본이 이렇게 됐을까. 근본적 원인은 쌀 공급량 감소다. 재작년과 작년 연이어 작황이 부진해 쌀 생산량이 2년 연속 줄었다. 이에 비해 쌀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외국인 관광객이 2배 급증하면서 쌀 수요가 늘어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밀 대신 쌀을 사용하는 가공식품 생산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작년 8월 전국적으로 발령한 거대 지진 경보가 기름을 부었다. 이후 각 가정에 비상식량 비축을 위한 쌀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중간 유통업체들까지 사재기에 가담하면서 시장에 쌀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 쌀값 상승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이런 쌀값 폭등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부가 보다 예민하게 대처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정부가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기 때문이다. 우선 쌀 생산이 줄고 소비는 늘었음에도 수급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정부 비축미를 방출하라는 시장 요구를 단기적 현상이라며 계속 묵살하다가 최근에야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타이밍을 놓친 대책은 시장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무책임하게 지진 경보를 발령한 것이나 유통시장 사재기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도 패착이었다는 평가다.
쌀은 식량안보의 핵심이다. 이번 일본의 쌀 소동은 정부가 식량안보 문제를 등한시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쌀값이 2배로 오른다면 그 사회적 파장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일 것이다. 이번 사태를 우리 식량안보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고 예민한 주의를 기울이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다만 일본에 부러운 점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났을 법한 위기 상황임에도 일본 사회가 비교적 의연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사태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민을 찾아보기 어렵고, 정치권과 정부도 이상하리만치 태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억지스러운 단기 대책으로 급한 불을 끄려고 하기보다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시장에 맡기는 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이번 위기를 잘 이겨내고 나면 일본의 쌀 시장이 이전보다 훨씬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과 같은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한 번쯤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