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한국인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을 넘어 세계인의 '솔푸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수출이 10억달러를 돌파하며 K라면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일본이지만, 이를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재탄생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라면 끓이기 비법 하나쯤은 갖고 있을 만큼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각별하다.
지난 2일 부산에서 개막한 '세계 라면 축제'가 기대를 모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축제는 준비 부족과 부실한 운영으로 행사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조기 종료됐다. 세계 15개국 2200여 종의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홍보와는 달리, 현장에는 국내 제품과 동남아 라면 등 총 7종만 전시됐고, 심지어 뜨거운 물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시식조차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모래·자갈밭 위에 설치된 행사장,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 등은 관람객의 실망을 더욱 키웠다. 1만원의 입장료를 낸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돈 주고 난민 체험을 했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2023년 파행으로 끝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빗대 '라면 잼버리'라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전 세계의 라면 레시피를 경험하고자 했던 관람객들의 기대는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푸드트럭 업체들은 약속된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주최 기관인 비영리법인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주최와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부산 지역 장애인연합회와 부산시의회 역시 책임 공방 속에서 발을 빼려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는 지역 축제의 기획·운영 방식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역 축제는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 아래 매년 수없이 열리지만, 바가지요금, 부실한 안전·위생 관리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일쑤다. 축제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조명하기보다는 단기적 수익에만 매몰된 결과다. 부산 세계라면축제의 실패는 지역 축제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 본질적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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