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또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일본 1위 에너지 기업 에네오스가 2027년까지 가와사키 정유소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2기를 폐쇄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1기당 연산 54만t, 44만t 규모다. 이는 일본 내 연간 에틸렌 생산량(2023년 682만t 기준)의 17%에 해당한다. 에네오스는 수요 감소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폐쇄 이유로 밝혔다. 이와 더불어 고부가가치 제품(스페셜티)을 중심으로 수출 역량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에네오스는 가동률 하락과 수요 감소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에네오스의 설비 축소는 처음이 아니다. 2005년 지요다 공장을 폐쇄했고 2014년에는 마루가메 공장을 통합했다. 위기 때마다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에네오스뿐 아니라 미쓰비시화학, 미쓰이화학, 쇼와덴코와 같은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도 필요시 과감하게 NCC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뒤엔 일본 정부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해 구조조정과 특정 제품 생산 집중을 지원했다. 한 지역당 NCC 1개사만 남기고 기업 간 통폐합을 유도했다. 일본 석유화학공업협회는 2020년까지 NCC 설비 20%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위기를 돌파했다.
반면 정부·기업 할 것 없이 역대급 위기라고 외치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은 제자리걸음을 반복 중이다. 업체는 눈치만 보고 있고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한 정부의 석화 사업 재편 계획은 기약 없이 밀리고 있다. 그사이 NCC 설비가 몰려 있는 여수와 울산의 곡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석유화학 생산 라인 곳곳이 문을 닫고 희망퇴직, 권고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부터 NCC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란 뜬소문으로 지역 분위기는 흉흉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마치 썰물이 돼야 누가 바지를 걷지 않았는지 드러나는 것처럼 구조조정을 미루면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은 옛말이다. 싫더라도 다시 한번 일본의 결단을 살펴봐야 할 때다. 뒤늦은 대처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