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저 스코어를 보고도 반납 안 하면 한국인이 아니다.'
해외 아티스트 최장 공연, 최다 관객, 최고 수익 기록을 남기며 지난 25일 마무리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장에선 뜻밖의 한일전이 펼쳐졌다. 공연장에서 야광봉 대신 사용한 자이로 밴드(LED팔찌) 회수율 경쟁이 벌어진 것.
콜드플레이는 공연장 입장객들에게 자이로 밴드를 무료로 나눠주고, 공연이 끝나면 회수해 다음 공연에 재사용한다.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자발적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공연장 대형 스크린에 도시별 팔찌 회수율을 보여주며 '착한 경쟁'을 유도한다. 한국 공연 이전까지 가장 높은 회수율을 기록한 곳은 일본 도쿄와 핀란드 헬싱키로 97%에 달했다.
서울(고양) 공연 첫날인 16일 회수율이 96%에 그치자 '도쿄에 질 수 없다'는 분위기가 SNS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18일 공연에서 98%로 높아진 팔찌 회수율은 22일과 24일에는 99%를 기록했고, 서울은 콜드플레이 역대 월드투어 중 가장 높은 회수율을 보인 도시가 됐다.
뜻밖의 한일전은 공연 문화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콜드플레이는 팔찌 재사용 이외에도 점프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댄스플로어 발전기와 공연장 곳곳에 놓인 자전거 발전기 등을 통해 친환경 공연을 실천한다. 플라스틱 생수병 반입은 금지되며, 콘서트 관람권 한 장당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 아이돌 콘서트장에서는 응원봉과 포토카드 등 각종 굿즈 구매 경쟁이 여전하다. 한 회 공연에 수천, 수만 개씩 팔리는 응원봉은 대부분 플라스틱 복합 소재로 만들어져 재활용이 쉽지 않다. 시즌별로 새 제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수명도 짧아 곧 '예쁜 쓰레기'가 되고 만다. 포토카드, 앨범 사재기 등 아이돌 팬덤 문화가 초래하는 환경오염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관객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게 하는 친환경 공연, 콜드플레이가 보여준 가능성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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