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하버드대의 충돌이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대한 22억달러(약 3조원)의 연방 보조금을 동결한 데 이어 6000만달러(약 850억원)의 정부 계약을 중단했다. 여기에 더해 교육기관에 부여되는 면세지위 박탈, 외국인 유학생의 비자 취소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자 하버드대가 초강수를 뒀다. 21일 연방 보조금 동결과 지원금 중단이 위법하다며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정부 방침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당한 조치라는 것이다.
갈등의 시작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3일과 11일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비롯됐다. 요구는 단호했고 내용은 노골적이었다. 문건에는 입학·채용 시 다양성 우대 조치 중단, 대학 거버넌스 개혁 등의 요구가 담겼다. 핵심은 대학가에 퍼진 반유대주의 청산이다.
트럼프의 하버드대 때리기는 재정 지원을 무기로 한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은 단순히 대학 자율성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아니다.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좌파 정체성 정치의 온상'이 됐다고 주장했고, 하버드대 교수들은 "정부의 정치적 견해와 정책 선호를 대학에 강요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컬럼비아대는 정부의 재정 중단 압박에 굴복했지만 하버드대는 "장악당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그 배경에는 막대한 기금이 있다. '가장 부유한 대학'으로 불리는 하버드대의 2024년 기금은 532억달러(약 76조원)다. 미국 건국보다 140년 빠른 1636년 설립됐고, 8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세계적 명문 대학이다.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돈으로 대학을 주무를 수 있을까. 권력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꺾을 수 있을까. 트럼프와 하버드대의 싸움은 결국, 오늘의 미국이 어떤 가치를 선택할지에 대한 시험대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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