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3.01 21:00:00
의사소통의 심리학(1)
매경이코노미가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의 ‘의사소통의 심리학’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됐을까’라는 주제로 ‘의사소통’의 놀라운 비밀을 문화심리학적으로 풀어봅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작동해야 하는데, 이들 요소가 어떻게 가능해지고 작동하는가를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 능력이나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갓 태어난 아기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무능력해 보이던 아이가 불과 몇 개월 후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좀 더 자라면 타인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설득하려 합니다. 도대체 그 몇 년 사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번에 시작하는 ‘우리는 어떻게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됐을까’는 ‘의사소통’의 이 놀라운 비밀을 문화심리학적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설득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매 순간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일단 아기와 어머니(여기서 ‘어머니’는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양육자를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사이에는 터치(touch), 눈맞춤(eye contact), 정서 조율(affect attunement), 순서 바꾸기(turn taking) 등 4가지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던 두 사람 사이의 소통 방식은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대상이 두 사람 사이를 매개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지요. 이때 두 사람의 의사소통에는 공동주의(joint attention), 관점 획득(perspective taking) 등 2가지 요소가 더불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위와 같은 의사소통의 6가지 요소가 어떻게 가능해지고 작동하는지를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6가지 소통의 핵심 요소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의사소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망가져서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지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건강한 소통을 위해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일상의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Part 1. 터치(touch)
1. 혼자만 기쁘면, 더 슬퍼집니다
수십 년 전, 독일 베를린에 유학 갔을 때입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아주 운 좋게 어학 시험에 바로 붙었습니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독일 대학은 수업료가 없었습니다. 장학금은 생활비 수준으로 지급되었습니다. 구하기 힘들다는 저렴한 학생 기숙사도 쉽게 구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하늘을 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감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이메일도 없던 때입니다. 국제전화는 당황할 정도로 동전이 빨리 떨어졌습니다. 딸깍거리며 떨어지는 동전 소리에 나는 그저 안부만 묻고, “나는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어요!” 하며 급하게 전화를 끊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기쁨을 전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수화기를 걸고 돌아서자, 갑자기 엄청난 우울함이 밀려왔습니다.
당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설레는 표정으로 거리를 오갔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 문 열기조차 어려운 공중전화 부스를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느닷없이 혼자라는 격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기숙사 입구의 작은 집 부엌에서는 젊은 부부가 어린 딸과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눈 쌓인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면서 얼마나 컥컥대며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그때 나는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혼자만 기쁘면 더 슬퍼진다는 것을.
인간의 감정은 지극히 상호적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정서를 공유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자신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할 때, 외로워집니다. 외로움의 본질은 내 감정을 남과 공유 못하는 것입니다. 정서를 공유하지 못할 때, 슬픔은 더 슬프게 느껴지고, 기쁨도 슬픔으로 변합니다. 웃을 때, 옆 사람을 살짝 때리거나 건드리는 이유는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자는 무의식적인 메시지입니다. 혼자 기뻐야 아무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인플루엔자(influenza)가 전염되듯 인간의 감정도 전염된다는 뜻이지요. ‘터치(touch)’는 이 같은 감정 공유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2. 그래서 꼭 있습니다! 웃을 때, 옆의 남자를 자꾸 때리는 여자!
같은 여자들은 눈꼴시어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여자에게 쉽게 넘어갑니다. 옆의 여자가 웃으며 자기를 때리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혹시 날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실제 연구 결과가 그렇습니다. 만지면 아주 쉽게 넘어갑니다. ‘터치’의 효과에 관한 아주 고전적인 실험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휘턴대의 클라인키(Kleinke) 교수 연구팀은 공중전화 부스 선반에 10센트 동전을 미리 놓아두었습니다. 남자가 전화를 걸다 동전을 발견해 손에 넣고 부스를 나올 때, 여자 실험자가 접근해 “혹시 동전을 봤나요?”라고 물어봅니다. 이때, 여자가 남자의 팔을 가볍게 터치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터치할 때, 동전을 돌려줄 확률(96%)이 그렇지 않을 때(63%)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만지면 아주 쉽게 넘어갑니다. 터치에 남자만 예민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부탁할 때 가볍게 신체 접촉을 하면 요청을 수락할 확률이 월등하게 높아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접촉을 인식했을 때나 인식하지 못했을 때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터치가 인지적인 처리를 거치지 않아도 작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웨이터가 손님을 가볍게 터치할 때 팁이 20~30% 올랐다고 합니다.
터치 이외에도 팁을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터치는 매우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참고로 팁을 많이 받는 비결은 이렇습니다.
❶ 옷을 다르게 입어라(단순히 액세서리만 달리해도 팁은 17% 증가). ❷ 손님을 가볍게 터치하라. ❸ 자기 이름을 밝혀라(인격적인 만남이 된다). ❹ 무조건 많이 팔아라(많이 팔수록 팁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❺ 손님과 눈높이를 맞춰라(웨이터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기분 좋을 리 없다). ❻ 손님 주문을 소리 내어 따라 하라(주의 깊게 듣는다는 인상을 준다). ❼ 신용카드사 로고가 찍힌 계산서를 사용하라(이유는 잘 모른다). ❽ 웃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라(팁 증가가 140%로 가장 드라마틱했다). ❾ 좋은 날씨를 예보하라(누구나 긍정적인 미래를 원한다). ❿ 초콜릿 같은 작은 선물을 하라(받은 만큼 주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나 농구 같은 팀 경기에서 같은 팀 선수들 사이 터치가 경기 성과에 미치는 영향 또한 결정적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켈트너(Keltner) 교수는 2008~2009년 미국 NBA에 속한 30개 팀 선수 294명을 대상으로 하이파이브, 주먹 부딪히기, 가벼운 포옹, 머리 터치 등 신체 접촉이 경기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팀의 득점, 리바운드 및 어시스트 비율, 팀의 총 승리 횟수는 터치 같은 신체 접촉과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줬습니다. 부가적으로 흥미로운 현상도 발견되었습니다. 고연봉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더 자주 터치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흥미롭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신체 접촉이 빈번하다는 가설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성공한 사람이 더 많이 터치? 더 많이 터치해야 성공?
이미 오래전 연구에서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더 자주 터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 연구 결과로는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터치하는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는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터치의 경향을 ‘터치 특권(touch privilege)’이라 불렀습니다. 이 같은 사회적 지위와 터치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형성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지적, 신체적, 사회적 영역에서 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 더 많은 신체적 접촉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악수와 같은 터치 방식은 자신을 인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선거 유세할 때, 정치인들은 하루 종일 악수만 하고 돌아다닙니다. 투표함 앞에서 유권자들은 연설을 잘한 사람보다 자신과 터치한 사람을 먼저 기억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과 악수를 해보면 그 사람의 경력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을 오래 한 사람들의 악력(握力)은 남다릅니다.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지역구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악수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은커녕 만났던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다음 국회 회기가 되면 이들 대부분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의사소통 발달을 전공으로 디플롬(한국의 석사 학위에 해당)을 받고, 박사 과정에서는 의사소통 이론을 문화 전반의 현상으로 설명한 논문으로 문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전임강사로 수년간 강의도 했습니다. 다문화 국가인 미국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갖는 한국 사람은 많지만, 당시 학문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매우 배타적인 독일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나름 성공적인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만.
슬프게도 나를 국내에 자리 잡게 도와주는 심리학과 교수나 선배는 없었습니다. 심리학 관련 학과의 교수 임용에 8번이나 지원했지만 매번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에 한남대교 다리 밑에서 낚시를 하며 몇 년을 지냈습니다.
지금도 그때 느꼈던 좌절과 분노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가 됐지만, 내 전공을 가르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십여년간 ‘심리학개론’만 죽어라 가르쳐야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전공학과가 없는 교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나가 일부러 우스갯소리도 자주 했습니다. TV에 흔히 나오는 ‘어설픈 강사’ 취급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유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중적 유명세를 바탕으로 ‘에디톨로지’ ‘창조적 시선’ 같은 문화심리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에 충실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 꽤 큰 반응도 받았습니다. 경제적 자유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석사, 박사 과정에서 내가 전공한 ‘의사소통’에 관한 책을 쓸 기회는 없었습니다. 아쉬움에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주제로 의사소통에 관한 강연을 자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좋아했습니다. 더 늙기 전에 그 내용을 정리해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나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너무 잘난 체를 합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하면 그저 비웃으면 되는데, 난 진짜 잘났습니다. 상대방이 무척 힘들어합니다. 의사소통에 유독 문제가 많은 심리학자의 의사소통에 관한 글이기에 흥미로울 겁니다. 그만큼 깊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내 글이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지 못해 수시로 외롭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주 슬픈 이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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