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바꾸고 나서 '아뿔싸' 한 적이 있다. 더 이상 마른 김을 약한 가스불에 살짝살짝 구울 수가 없는 것이다. 달군 프라이팬에 올려 구우면 특유의 바삭함과 불맛을 느끼기 어렵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타거나 바스러지기 일쑤다.
내 인생 최고의 김 요리는 연탄불에 양념 없이 구워 한 종지 간장과 함께 내놓은 김이다. 기본 안주로 그렇게 구운 김을 내는 단골 술집이 있었다. 그 집이 문을 닫은 후로 어느 술집에서도 그런 후한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다. 김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굽는 정성이 술맛을 돋우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막 구워 먹는 파래김은 100장, 200장 단위로 포장돼 나왔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며칠 집중해서 먹으면 물리는 이치라 남은 김을 냉동고에 넣어두면 묵은 김이 되어 맛도 없어진다. 김국 용도로나 적합하다. 그렇게 태반을 버리면서도 매년 햇김을 살 때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김은 아미노산이 풍부한 음식이다. 김 다섯 장에 달걀 1개만큼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쌀밥을 쉽게 넘어가게 하는 것은 소금기와 단백질인데 김을 간장에 찍으면 쌀밥과 하모니가 생겨난다. 김 식문화가 발달한 한국과 일본은 김 양식에 적합한 바다가 있고 자포니카종의 쌀밥을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밥 기원을 놓고 논쟁이 있지만 일본의 '노리마키(海苔卷き)'가 원형이라는 게 정설이다.
한류 영향으로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도 김을 많이 먹는다. 2020년 55대45이던 내수와 수출 비중이 2023년에는 37대63으로 역전됐다. 수산물 중 첫 수출 1조원을 돌파하면서 '검은 반도체'란 말도 생겨났다. 수출이 는 만큼 국내 수급 물량은 달려 김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13일 현재 마른 김 10장의 평균 소매가격은 1513원으로 1년 전에 비해 43.5% 급등했다. 14일 기준 국제 D램 최저가(DDR4 8Gb 기준)는 1.30달러로 약 1800원이다. 김 10장과 D램 값이 얼추 맞먹는 셈이니 그야말로 검은 반도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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