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6 19:27:05
제네시스 G90 블랙 에디션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의 정통 노면 미끄러지는 듯한 승차감 ‘K-방지턱’도 부드럽게 넘어 실내 엔진음 유입 적어 고급감 암레스트 스마트폰 거치대 버튼 찾기 쉬운 2열 시트 조절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디테일 만족
오랜 기간 플래그십 세단은 수입 완성차 브랜드들의 영역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까지. 이 차종들은 승차감 뿐만 아니라 외관 디자인과 내장재의 고급감, 각종 첨단 편의사양에 NVH 성능 등등 해당 브랜드를 평가하는 결정체에 해당하는 세그먼트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의 대표주자인 현대자동차 역시 플래그십의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수십년 간 공을 들여왔다. 1980년 일명 ‘각그랜저’로 불렸던 그랜저에서 시작한 역사는 에쿠스를 넘어 지금의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에 닿았다. 제네시스라는 상표의 시작이 2008년에 출시한 플래그십 세단 BH(코드명)라는 차종 이름이었다는 점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지향하는 최종 목표를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에 두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제네시스 브랜드 설립 3년 만인 2018년 말 지금의 플래그십 세단 G90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기할 부분은 2021년 한 차례 풀체인지를 거친 G90의 코드명이 ‘RS4’라는 점이다. 현대차는 알파벳 뒤에 붙는 숫자로 이 차량이 몇 세대인지를 표기한다. 완전히 새로운 차종임에도 뒤에 4가 붙은 이유는, 현대차그룹 스스로 이 차량을 에쿠스 1세대와 2세대, 제네시스 EQ900(3세대)을 잇는 차종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플래그십 세단의 또 다른 덕목 중 하나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현대차그룹의 노력은 이처럼 처절했다.
프리미엄을 향한 기나긴 현대차그룹의 열정을 담은 제네시스 G90을 시승했다. 시승 차량은 G90 중에서도 외관의 강렬함을 더한 G90 블랙에디션이다. 후드 아래에는 6기통 가솔린 3.5 터보 엔진이 자리한다. 사륜구동 방식을 채택했으며 MHEV(마일드하이브리드)가 장착돼 합산 출력은 415마력이다.
마침 이달 초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GLS를 시승한 바, G90의 총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이바흐의 95% 정도를 따라잡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승차감, 차음성, 진동억제 등 플래그십 세단의 기본 덕목 차원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등 ‘독삼사’플래그십 세단과 크게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특히 방지턱 승차감, 각종 편의사양 등 한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리미엄의 기준 측면에서는 독삼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먼저 승차감 부분이다. 승차감 차원에서는 독삼사 플래그십과 같거나 아주 약간 부족한 정도로 느껴진다. 노면이 고른 구간에서는 정말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는 느낌이 훌륭하다. 특히 방지턱을 넘을 경우가 인상적이었는데, E-ABC 기능이 장착된 GLS 마이바흐보다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특성을 보인다. 다만 노면이 다소 거칠어지는 경우에는 진동이 실내로 다소 유입된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스탑앤고 작동이다. 주행하다가 정차를 할 경우 상당 수의 차량은 차량이 완전히 멈춘 뒤 엔진 시동을 종료하는데, G90은 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부드럽게 시동을 끈다. 재출발 시 엔진 시동 진동 역시 크지 않다. MHEV를 장착한 덕분인지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할 경우 파란불로 바뀔때까지 엔진 시동을 켜지 않았는데, 덕분에 정차 시 NVH가 훌륭하게 다가왔다. 다만, 2열 승차감을 위한 ‘쇼퍼 모드’의 경우 켜고 끔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운 점은 오너드리븐으로 차량을 운전할 때다. 컴포트 세팅으로 맞춰진 차량인 만큼 기대하지 않았던 게 스포츠성인데, 의외의 즐거움을 느꼈다. 가속은 초반부터 토크가 쏟아지는 방식이 아니라 중반부터 풍부하게 쏟아져 들어온다. 스포츠모드로 세팅할 경우 중저음의 엔진음도 다소 증폭시키는데, 이 역시 중후함으로 다가와 차급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G90이 독삼사보다 우수한 부분은 엔진음 억제와 차음성이다. 출발시에는 엔진음이 다소 유입되지만 시속 50km 이상으로만 속도를 높여도 엔진음의 음역대가 로드노이즈 등에 녹아들어가 엔진음이 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부분은 감히 마이바흐 GLS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이바흐 GLS의 경우 8기통의 엔진음이 크지는 않지만 저속, 중속, 고속 모두에서 운전자에게 의식될 정도로 실내에 유입됐다. 특히 G90은 고속 영역에 진입하면 이중접합유리가 만들어주는 완벽한 차음 성능과 맞물려, 차량이 정차해있는게 아닐까라는 느낌도 준다.
또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한국인에 맞춘 편의사양이다. G90은 차량 무선 충전 포트를 암레스트 가운데 세로로 꽂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운전 중에도 업무에 시달리는 한국인의 특성상, 아무리 애플 카플레이가 있어도 정차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굳이 어디에 스마트폰을 꽂아야 하는지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거치하고 꺼낼 수 있었다.
2열에서는 시트 포지션을 4단계로 나눠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표시한 점이 장점이다. G90의 경우 완전히 시트를 눕히는 레스트 모드와 원래 포지션으로 시트를 되돌리는 기능이 모두 원버튼으로 가능해 편리했다.
실내 디자인에서의 위트도 돋보였다. 최근 국산, 수입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완성차 브랜드들은 대시보드 디스플레이와 센터 디스플레이를 가로 형태로 이어지도록 배치한다. 하지만 이 경우 실내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이라 고급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G90 역시 쏘나타, 아이오닉5 등과 비슷하게 가로로 긴 두 개의 디스플레이 배치를 사용한다. 하지만, 두 디스플레이 사이에 긴 타원 모양의 구조물을 넣고 이를 가죽으로 감쌌다. 이 같은 하나의 ‘킥’으로 G90의 실내는 현대차의 대중적인 모델들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2열 시트에서 느껴진다. 경쟁 차종에 비해 시트가 다소 딱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1열은 그대로 두더라도 2열 시트는 조금 더 푹신한 느낌이 필요해 보인다. 신장이 180cm인 기자가 레스트 모드를 작동할 경우, 발바닥 전체가 1열에 닿아 완전히 편안한 자세로 누울 수는 없다는 점도 다소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