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5 13:44:13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여 만에 금융권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3500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유치하며 파죽지세의 순유입을 기록한 반면 신한은행 등 은행권에서는 대규모 자금 순유출이 발생하며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금융투자업계는 향후 퇴직연금 자금 유치를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퇴직연금 어디로 이동?
매경이코노미가 단독 입수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금융감독원 ‘퇴직연금사업자별 실물이전 순유입 및 순유출 규모(상위 5개사)’)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기준 한국투자증권은 제도 시행 이후 총 3513억 5100만원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순유입하며 전체 금융회사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는 지난 1월 말 기준 순유입액 2074억 원에서 두 달여 만에 1400억 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순유입 상위 5개사를 살펴보면 한국투자증권(3513억 5100만원)에 이어 미래에셋증권이 2439억 1400만원, 삼성증권이 1269억 600만원, 삼성화재해상보험이 817억 6600만원, KB증권이 490억 5300만원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이번 자료에서는 지난 1월 말 기준 상위 5개사에 포함됐던 한화생명 대신 KB증권이 새롭게 진입했으며 순유입 규모 역시 전반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1월 말 기준 적립액 규모 2위와 5위였던 현대차증권과 NH투자증권은 3월 말 기준 순유입 상위 5개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퇴직연금 유형별 순유입·순유출 규모(2025년 3월 31일 기준)를 보면 한국투자증권은 확정급여(DB)형에서 405억 6900만원이 순유출됐으나 확정기여(DC)형에서 1369억 900만원,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2550억 1100만원이 각각 순유입되며 전체 순유입액을 끌어올렸다. 특히 개인형IRP에서의 순유입 규모가 두드러지며 전체 순유입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증권사를 통한 퇴직연금 투자는 ETF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펀드 및 채권 상품 라인업이 다양해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은행권 울상 ... 신한은행 약 3000억 유출
반면 은행권에서는 대규모 순유출이 발생하며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순유출 상위 5개사 중 신한은행이 2958억 7100만원의 순유출을 기록하며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어 KB은행(△1243억 5300만원), 우리은행(△1142억 700만원), 기업은행(△1084억 1500만원) 또한 1000억원 이상의 순유출을 기록하며 ‘뼈아픈’ 성적을 보였다. 미래에셋생명보험도 958억 3600만원의 순유출을 기록하며 순유출 상위 5개사에 포함됐다.
증권사 ‘함박웃음’
업권별 실물이전 규모에서도 은행권의 자금 이탈이 확연히 드러났다. 3월 말 기준으로 은행권에서는 8조 3450억원의 순유출이 발생한 반면 증권업권은 7조 9940억원의 순유입을 기록하며 퇴직연금 자금이 증권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보험업권은 3510억원의 순유입을 보였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은행에서 증권사로 순유출된 금액이 4109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 만에 자금 이동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는 DC형과 IRP 계좌의 경우 투자 상품 선택의 폭이 넓고 적극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한 증권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금융회사 간 장벽을 허물어 가입자들이 적립금 전액을 형태 변경 없이 다른 금융회사로 옮길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로,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의 금융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은행권의 대규모 자금 유출이 확인되면서, 퇴직연금 시장의 주도권이 증권사로 넘어가는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란?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란 가입자가 퇴직연금 계좌(DB형, DC형, IRP)를 다른 금융회사로 옮길 때, 기존 계좌에 보유하고 있던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리츠 등 유가증권을 현금화하지 않고 그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회사로 이전하려면 모든 상품을 매도하고 현금으로 전환한 뒤에야 다른 회사에서 다시 상품을 매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실물이전 제도가 도입되면서 가입자의 금융회사 이동이 훨씬 편리해졌다. 이는 금융회사 간 퇴직연금 유치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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