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98%인 약물 GLP-1 주요 제약사 특허 만료되며 각국 주도권 선점경쟁 과열 中서 1년새 복제약 3종 승인 연구개발 초기 머무는 韓기업 먹는 약 늘려 편의성 개선하고 병행요법 개발해 빠른 대응을
비만은 개인의 건강 및 사회·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손실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현대 질환이다. 미국 밀컨연구소는 비만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의료비 등으로 연간 약 1조4000억달러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997년부터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규정해 왔다.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약물 치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약업계는 비만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23년부터 연평균 48.4% 성장해 2028년에는 약 480억달러(약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의 중심에는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이하 GLP-1 약물)가 있다. 당초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GLP-1 약물은 포만감 증가 및 식욕 억제 효과로 비만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점유율의 98%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GLP-1 약물의 특허를 보유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나, 주요 약물의 특허가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 새로운 경쟁 국면이 열리고 있다. 이 틈을 선점하는 기업이 차세대 비만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기존 약가의 30~40% 수준이라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복제약(제네릭)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2024년 말 기준, 3개의 GLP-1 제네릭이 승인됐으며, 글로벌 정보분석 업체 클래리베이트에 따르면 총 11개의 제네릭이 개발 중이고, 일부는 임상 3상에 진입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제네릭 및 새로운 제형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데,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세마글루타이드의 마이크로니들 패치 개발에 대한 초기 임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2월부터는 제네릭 승인을 위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특허 만료 이후 복제약의 출시와 함께 경쟁이 과열되는 환경에서 혁신 기술 개발 및 빠른 시장 진입을 뒷받침할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존 주사제 제품의 편의성을 개선해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환자의 편의성과 치료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피하주사 제형을 경구용으로 전환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높은 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다. 현재까지 허가받은 펩타이드 기반 GLP-1 경구제는 단 한 제품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낮은 흡수율 탓에 피하주사 제형에 머물러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펩타이드 원료의 대량 수급이 원활하거나, 흡수율과 안정성이 뛰어난 저분자 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경구용 GLP-1 유사체 개발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GLP-1 약물의 적응증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GLP-1 약물의 적응증을 당뇨·비만에서 신장질환, 심혈관질환, 지방간염(MASH) 등으로 넓히고 있는데, 글로벌 제약사 N사의 2023년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위약 대비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24% 감소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알코올 중독증 등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까지 연구가 확대되며 GLP-1 약물이 '만능 대사질환 치료제'로 진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는 병용요법 개발이다. 체중 감량과 대사 개선 효과를 위한 GLP-1 치료제에 다른 약물을 결합해 정밀하고 복합적인 치료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병용요법은 해외를 시작으로 차세대 대사질환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근감소증 치료제와 병용할 경우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보존하는 복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또한 이미 승인된 치료제와의 병용요법은 개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빠른 시장 진출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비만 치료제 연구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제약사들은 아직 비만·당뇨 단독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양한 적응증을 겨냥한 복합 치료 전략 또는 병용요법에 대한 연구개발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병용요법은 임상 설계가 복잡하고 기술적 난도도 높지만, 글로벌 제약사 사례에서 보듯 효능과 시장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다.
비만 치료제의 수요 급증에 따라 생산 역량 또한 시장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펩타이드 기반 약물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원료 수급이 까다로워 생산 설비 확충과 원료 공급망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제약사의 치료제는 원료 수급 문제로 인해 2022년 3월부터 2025년 2월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급 부족 목록에 등재됐고, 이로 인해 제네릭 판매를 3년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신약 및 복제약 출시가 본격화되면 펩타이드 원료(API) 수급과 필-피니시(완제품화) 공정을 위해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경구제는 주사제에 비해 원료 소모량이 많아 대량생산 역량을 갖춘 CDMO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시장 성장이 본격화될수록 사회적 대응과 정책적 장치도 정비돼야 한다. 무분별한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합리적 보험 급여 체계 마련, 비만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비만을 명확한 의료적 만성질환으로 정의하고, 근거 기반의 급여 체계를 통해 과도한 약가 상승과 환자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체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기술, 생산,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대응할 수 있는 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비만 치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제약사들도 제형 혁신, 적응증 확대 및 병용요법 개발과 생산 역량 확보를 통해 후발주자로서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제약사와 CDMO 업계는 이 변화의 흐름을 기회로 삼아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진입의 가속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