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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칼날 조여오자…FBI 국장을 자른 트럼프

  • 문재용
  • 기사입력:2017.05.10 17:55:11
  • 최종수정:2017-05-10 21: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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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9일(현지시간) 전격 해임했다. 코미 국장은 지난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트럼프 선거캠프-러시아의 내통 수사를 이끌며 현 정권 핵심을 겨누고 있던 인물이어서 독립성이 보장된 FBI 국장을 '눈엣가시'라는 이유로 해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백악관 측이 내놓은 공식 해임 사유는 지난해 '이메일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실책을 범했다는 것이지만 야당과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워터게이트(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불법 도청이 발각돼 사임한 사건)' 당시의 수사 탄압이 재연됐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2주 전 취임한 직후부터 코미 국장 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코미 국장으로 인해) FBI의 명예와 신뢰도가 크게 손상받았고, 이는 미국 내 수사기관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는데, 그가 밝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우선 코미 국장이 이메일 스캔들에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을 비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가 국무장관 재임 시절 사설 이메일을 통해 국가기밀을 취급했던 사건이다. FBI가 결국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해 불기소 방침을 정했지만 대선 이틀 전까지 논란이 계속되며 힐러리는 신뢰도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이 불기소 방침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 코미 국장이 오판을 내렸다는 것에 대부분이 동의한다"고 주장했다. 단 힐러리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한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로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지난해 10월 28일 코미 국장이 이메일 게이트 재수사를 발표한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언론을 직접 접촉해 수사 정보를 발표하는 것은 FBI 본연의 역할이 아니며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기밀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코미 국장은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코미 국장은 로스앤젤레스(LA)의 FBI 지부에서 일정을 수행하려던 도중 해임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은 트럼프 정권과 러시아 간 내통 의혹 수사를 중단시키려는 의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하필 이 시점에 이메일 스캔들의 불기소 방침과 재수사 발표를 문제 삼는 게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가 발표되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국장에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치켜세운 적도 있다. 애덤 시프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FBI로부터 러시아 내통 의혹을 조사받고 있는 법무장관의 건의로, 역시나 조사 대상인 대통령이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 백악관이 뻔뻔하게 개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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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겨눈 수사기관이 인사 보복을 당한 것을 놓고 워터게이트 때 닉슨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민주·미시간)은 해임 결정을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견하며 "사건 은폐의 악취가 풍긴다.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를 방해하려는 백악관의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했으며, 뉴욕타임스(NYT)는 "워터게이트 이후로 대통령 수사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해임된 적은 없다"며 "(코미 국장 해임이) 닉슨 전 대통령이 1973년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했던 '토요일 밤 대학살' 이후 첫 사례"라고 지적했다. 당시 닉슨 전 대통령은 자신을 불법 도청 혐의로 소환한 콕스 특검을 해임했다. 법무부 내 서열 1·2위인 장관과 부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임할 정도로 논란이 됐다. 서열 3위인 법무차관이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해 콕스 특검은 결국 해임됐다.

코미 국장의 해임 전까지 대통령이 FBI 국장을 직접 해임한 마지막 사례는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윤리규정 위반 논란을 일으킨 윌리엄 세션스 전 국장을 해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는데 코미 국장이 이를 반박하며 심기를 건드린 일도 해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개입 의혹은 물론 향후 FBI의 독립성 논란도 심해질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존 포데스타는 "코미 국장이 단지 이메일 수사를 잘못했던 탓에 해임됐다고 볼 수 없다"며 "수사의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역설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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