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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제조업·日소부장 잇는 가교 될 것"

이정길 일본 큐럭스 대표
日정부도 중요기술 지정한
차세대 OLED기업 수장 맡아
원천기술 특허 320건 보유
삼성·LG 이어 소니 러브콜
한일 양국기업 손잡으면
세계 표준 리드할 수 있어

  • 이승훈
  • 기사입력:2025.10.01 17:56:50
  • 최종수정:2025-10-01 19: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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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조 기술력과 일본 소재 기술을 잇는 가교가 될 겁니다."

1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 소재 회사인 '큐럭스(Kyulux)' 수장으로 취임한 이정길 사장의 각오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에서 한국인 대표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미래 시장의 판도를 바꿀 첨단 기술력을 가진 기업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 한국인에게 배타적인 환경에서 큐럭스 수장이 된 이 사장의 행보는 그만큼 특별하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이 사장은 "OLED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센 가운데 이를 한일이 함께 지켜야 할 전략자산으로 일본이 인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큐럭스는 규슈대 연구진이 2015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OLED의 4세대 발광 기술인 '하이퍼플루오레선스'를 세계 최초로 사업화 단계에 올려놓은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존의 형광 OLED보다 4배 이상 밝고, 인광 수준의 효율을 내면서도 희토류 금속을 쓰지 않는다. 값비싼 희토류가 빠지면서 원가 경쟁력과 함께 친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차세대 OLED 소재다. 그동안 수명이 짧은 것이 단점으로 꼽혔는데, 이 또한 큐럭스가 극복해냈다.

큐럭스의 핵심 경쟁력은 원천기술 특허다. 규슈대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으면서 115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고, 이 가운데 320건 이상을 등록했다.

큐럭스의 기술은 OLED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창업 이후 현재까지 '시리즈 C' 단계까지의 투자를 받았는데 전 세계 주요 기업 65곳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는 소니그룹과 재팬디스플레이(JDI), 일본 연구개발기구(JST) 등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기업공개(IPO) 등을 앞두고 '시리즈 D' 투자가 진행 중인데, 한일 양국의 대형 사모펀드(PEF)들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사장은 "큐럭스의 소재가 채용된 OLED 패널을 사용한 스마트폰은 해상도가 높은데도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배터리 시간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는 자동차 디스플레이와 가상현실(VR) 기기다.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넓고 화면 자체가 밝기 때문에 몰입감이 커지는 것이다.

큐럭스 기술의 파급력을 인지한 일본 정부는 지난달 부랴부랴 이를 '중요관리대상기술'로 지정했다. 이는 일본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일본이 기술적 우위를 가진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현재 리튬이온전지 분리막과 거대자기저항 센서, 반도체 회로 촬영용 전자 현미경, 항공기용 탄소섬유 제조 기법 등 첨단 기술 15종이 대상이며, 이번에 큐럭스의 소재 기술이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들 기술은 해외로 유출될 경우 업체가 의무적으로 일본 경제산업성에 사전 보고를 해야 한다.

이 사장은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룹 미래전략실을 거쳐 TV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와 네트워크사업부 등의 임원을 거쳤다. 2020년에는 한화그룹으로 이직해 최근까지 일본 지역의 신사업과 투자 등을 담당했다.

큐럭스가 이 사장을 영입한 것은 한일 양국에서 보여준 그의 사업화 능력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제품 판매를 통해 스타트업 단계에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또 주요 제품 판매처가 삼성·LG 등 한국 기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디스플레이 분야를 놓고 보면 삼성·LG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패널 기술, 일본은 독보적인 소재·장비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한일이 손을 맞잡으면 세계 표준 기술이 된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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