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K팝, K푸드, K뷰티 등 한류는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다. 2022년 이후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일본의 화장품 수입국 1위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미용실을 찾는 사람 중 한국에서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을 원한다고 요구하는 사람이 10명 중 4명에 이를 정도다.
한국에서 일류(日流)의 인기도 적지 않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일본 음식점 수가 2023년에 2만개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본 음식점 평균 매출은 외식업 전체 평균보다 20% 이상 많았다.
J팝을 즐기는 한국인이 늘면서 일본 가수들의 내한 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단독 공연을 위해 방한한 일본 가수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젊음의 거리 홍대는 일본 애니메이션 가게들이 즐비해 도쿄 아키하바라의 이름을 본떠 '홍키하바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달 말 후속편의 개봉을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국내에서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장기간 머물며 일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려는 일본 청년도 늘고 있다. 관광취업(워킹홀리데이) 목적으로 한국에 체류 중인 만 18~30세 일본인은 지난 6월 말 기준 1592명으로 최근 2년 사이 약 35% 늘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관계자는 "일본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K팝과 한국 드라마를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한 사례가 많다"며 "이들 중에서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취업 연계 프로그램이나 인턴십 기회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일본은 각광받는 유학 지역이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에 이어 한국인 학생들이 두 번째로 많이 유학하는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만 해도 일본은 미국, 중국, 호주에 밀려 한국 학생들이 네 번째로 유학을 가는 곳이었다. 엔화 약세 요인도 작용했지만 취업을 위한 전략적 유학지로 일본이 주목받고 있는 점이 큰 몫을 했다.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종민 씨(20)는 "처음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유학을 꿈꿨다. 지금은 일본 현지에서 경력을 쌓고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한국과 일본 청년들의 교차 취업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며 "한국 청년들은 국내 취업난 때문에 일본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일본 청년들은 K뷰티·K푸드 분야 기업들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한국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상대국에 대한 우호 감정 확산이 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는 일본인 비율은 56.3%였는데, 18~29세는 66.2%가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지난해 조사에서도 일본에 긍정적 인상을 느끼는 한국인 비율이 63.3%였다. 손 원장은 "양국 청년들은 직접적인 문화 경험을 통해 양국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손 원장은 "젊은 세대가 정치 갈등 이슈로 인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건 아니다"며 "양국 정치권이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을 통해 한일 협력 확대 동력을 계속해서 살려줘야 한일 청년 간 자연스러운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라고 당부했다.
[신윤재 기자 / 문광민 기자 /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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