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해자’ 확보기업 투자 물음표
“애플 투자? 독점 확보한 2016년부터
경쟁과 혁신 시장 기대 깨뜨릴 위험성”

“버핏은 미국 경제에 파괴적이지도 않았지만 창의적이지도 않았다.”
9일(현지시간) 존 아서스 블룸버그 선임 칼럼니스트가 ‘워런 버핏 vs 미국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주말 칼럼에서 워런 버핏이 지난 70여년 간 미국 경제에 끼친 영향과 투자 방식에 묵직한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끕니다.
올해 안에 은퇴를 결정한 ‘오마하의 오라클(신의 뜻을 전하는 신탁자·버핏의 별명)’을 향해 세상은 “미국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라며 그가 일깨운 가치 투자와 복리의 마법 등 유산을 조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촌철살인 투자 조언 이상으로 열정적인 재산 환원, 그리고 정부를 향해 “부자가 더 세금을 내야 한다”고 비판한 행보를 더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투자의 동기는 탐욕에서 출발하는데 오마하의 현명한 신탁자는 우리에게 몇 안 되는 ‘선한 탐욕’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존 아서스 선임 칼럼니스트의 글 역시 버핏이 남긴 이런 거대한 유산을 부인하기보다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목록 상단에 있는 기업들의 가치 본질인 ‘시장 지배력’에 대해 한번 고민을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한마디로 “왜 버핏은 테슬라 같은 기업에 적극 투자하지 않았을까”를 묻는 비평입니다.

그는 버핏을 ‘정직한 관리인’으로 부르며 “지난 70여년 간 모든 규칙을 꼼꼼하게 따랐으며 부적절한 의혹을 조금이라도 일으킨 적이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의 투자 방식이 경쟁 당국이 시장 지배력을 문제 삼아 반독점 소송을 내는 기업 위주로 투자금을 쏟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투자가 시장 경쟁 부족으로 인해 미국 경제 시스템을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게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애플, 코카콜라, 크래프트하인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을 보면 소비재와 금융 등 각 분야에서 독과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입니다.
그는 “버핏의 매력이나 성공에 대해 논쟁하기는 어렵지만, 그 위대한 투자자는 좋은 독점을 좋아한다”는 부제와 함께 시작한 칼럼에서 과거 버핏이 남긴 유명한 표현인 ‘넓은 경제적 해자(moat)’를 거론합니다.
해자(垓子)는 적들이 성벽을 올라타지 못하도록 성벽 바깥을 빙 둘러싼 물웅덩이를 가리킵니다. 현대적 의미는 ‘난공불락의 경쟁우위’입니다. 코카콜라와 애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강력한 브랜드 영향력과 함께 이런 경제적 해자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해자를 넘기 위해 경쟁 기업은 천문학적 지출을 감내(높은 전환비용)해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이 해자를 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력은 난공불락 수준입니다.

(버크셔의 해자 중심 사고는) 포트폴리오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 철학은 브랜드 파워가 뛰어나 제품을 바꾸려는 재앙적인 시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코카콜라, 이미 자사 면도기를 구매한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고가의 ‘면도날’을 판매할 수 있는 질레트, 결제 카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마스터카드·비자 3사에 대한 지분 투자로 이어졌다. 버핏은 승자를 고르는 대신 이들이 해자 뒤에 숨어 있는 과점 기업이라고 판단하고 지분을 매입했다.
아서스 칼럼니스트는 이런 버크셔식(式) 자본주의가 혁신 기업들의 사회적 혜택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에 있는 기업들이 제공하는 혁신 제품이 (투자 목록에 없는) 테슬라,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의 혁신 제품과 서비스와 비교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 기업 외에도 버크셔 해서웨이의 선호 목록에 있는 사탕(시스)과 패스트푸드(도미노피자), 화석연료(셰브론, 옥시덴탈), 임원용 제트기(넷젯) 분야 기업이 유사 사례입니다.
특히 애플에 대한 아서스 칼럼니스트의 짧지만 묵직한 지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시점은 애플의 혁신성이 발현한 이후 시점이지 그 전에 애플의 성장을 도운 도전적 투자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사실, 버핏이 가장 많이 보유한 주식은 애플이며 버크셔가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애플이 벌었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버크셔의 애플 지분은 아이폰과 그 생태계가 구축된 지 10여년이 흐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점의 매수는 애플이 성공적으로 독점을 구축했다는 (정확한) 계산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 버핏이 투자 원칙으로 언급한 경제적 해자론을 비판한 일론 머스크의 입장도 조명합니다.
2018년 테슬라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침략군에 대한 유일한 방어책이 해자뿐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속도이며, 이것이 바로 경쟁력의 근본적인 결정 요인이다”.
아서스 칼럼니스트는 과거 “왜 테슬라 주식을 사지 않느냐”는 질문에 버핏이 “전기차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주가가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아니라 (타사) 경쟁의 가능성을 모두 없애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라고 답한 점을 환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쉬워합니다.
버핏의 투자는 간접적으로 많은 연금 수급자와 자선 단체를 포함한 투자자들을 훨씬 더 부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넓은 경제적 해자 논리는) 시장에서 불평등과 경쟁 부족을 키웠고 이로 인해 미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혁신) 기대를 깨는 데 일조했다. 이는 (미국 경제에) 파괴적이지도 않았지만 창조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사실 테슬라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비약적 발전과 추격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혁신의 비약적 속도를 추동했던 일론 머스크라는 CEO는 존재 자체가 기업 리스크가 됐습니다.
작금의 테슬라 위기를 볼 때 머스크가 강조한 ‘혁신의 속도’보다 잠재적인 경쟁을 막는 ‘해자’에 우선순위를 뒀어야 한다는 버핏의 견해는 투자자 입장에서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칼럼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경쟁 우위를 구축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하지만 이 기업이 만든 ‘해자’를 깨뜨리기 위해 지금도 많은 기업이 혁신을 실험하고 있어. 이런 숨은 기업을 찾아내 도전을 키우는 투자야 말로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 모두를 살찌울 수 있어”라는 물음표를 만듭니다.
지난 수 십년 간 세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은 버핏의 유산을 마냥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한 언론 칼럼은 비단 성공 가도를 달리는 미국 경제 뿐 아니라 경쟁과 혁신의 속도에서 뒤처지며 ‘주식 1원칙, 국장은 안 돼’라는 미신적 진리에 포획된 한국 경제에 많은 고민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