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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 7차전 극적 우승 김병호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당구父女’ 김병호-보미 인터뷰 “파이널 동반우승? 못할거 없죠”
결승전 터벅터벅 무심타법 “가장 마음 편할 때 하는 동작”
보미는 어떤 딸? 애교없고 무뚝뚝…우승하고 더 가까워져
딸에게 아빠는? “항상 엄격…오늘의 나는 모두 아빠 덕”
김보미 “이제 ‘보미 아빠’보다 ‘프로선수 김병호’로 살았으면”

  • 기사입력:2020.02.08 11:07:39
  • 최종수정:2020-02-12 08: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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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보미 ‘당구부녀’ 인터뷰는 우승 이후 고향(대구)을 다녀오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4일에야 이뤄졌다. 서울 논현동 브라보캐롬클럽에서 만난 부녀는 방송녹화를 마치고 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김병호-보미 ‘당구부녀’ 인터뷰는 우승 이후 고향(대구)을 다녀오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4일에야 이뤄졌다. 서울 논현동 브라보캐롬클럽에서 만난 부녀는 방송녹화를 마치고 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우석 기자] ‘보미 아빠’ 김병호가 극적으로 우승한 ‘웰뱅-웰컴저축은행 PBA챔피언십’ 결승전은 ‘PBA 최고 명승부’였다. 결승전(1월27일)후 10여일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당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심지어 ‘당알못’(당구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다른건 몰라도 그 경기는 봤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날 결승전은 명승부로서 갖춰야할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랭킹 70위 언더독의 반란, 마지막7세트, 1:7로 패색이 짙던 상황, 한큐 10점 버저비터로 경기종료, 항상 자신보다 ‘당구선수 딸’이 먼저이던 애틋한 부정(父情)까지….

그랬기에 마지막 챔피언샷이 성공했을 때 관중석은 감동의 도가니였고, 딸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병호 선수뿐 아니라 현장에서든 TV로든 그 경기를 본 사람도 승자였다.

7차전 우승으로 김병호는 많은게 달라졌다. 다음시즌 1부투어 잔류를 걱정해야 했으나 단숨에 랭킹7위로 올라섰고, 상금상위 32명만 출전하는 PBA 파이널 티켓도 확보했다.

김병호-보미 ‘당구부녀’ 인터뷰는 우승 이후 고향(대구)을 다녀오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4일에야 이뤄졌다. 서울 논현동 브라보캐롬클럽에서 만난 부녀는 방송녹화를 마치고 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날 결승전은 명승부로서 갖춰야할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그랬기에 마지막 챔피언샷이 성공했을 때 관중석은 감동의 도가니였고, 딸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병호 선수뿐 아니라 현장에서든 TV로든 그 경기를 본 사람도 승자였다.
그날 결승전은 명승부로서 갖춰야할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그랬기에 마지막 챔피언샷이 성공했을 때 관중석은 감동의 도가니였고, 딸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병호 선수뿐 아니라 현장에서든 TV로든 그 경기를 본 사람도 승자였다.
▲우승 후 열흘 가량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우승 다음날부터 정신없이 보냈다. 그 동안 인터뷰도 많이 하고 고향 대구에 내려가 지인도 만났다. 대구는 내가 당구선수 기틀을 닦은 곳이기에 고마운 분들께 꼭 인사를 드리는게 도리라 생각했다. 또 어머님 생신이 겹쳐 가족끼리 ‘축하파티’도 했다.

▲가족파티 분위기가 궁금하다.

=지금까지는 항상 딸 보미가 우승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왔기 때문에 보미를 많이 반기셨는데, 이번엔 저에게 특히 고생했다고 해주시더라. 하하. 제가 2남2녀 막내인데 특히 당구를 좋아하는 형님이 정말 기뻐하고 축하해주셨다.

▲결승전을 되짚어보자면.

=사실 내가 어떻게 결승전을 치렀는지, 어떤 공을 쳤는지 기억이 잘 안나 대회 후에 영상을 통해 다시 경기를 봤다. 결승전때 기억나는 건 마지막 세트서 7:7 동점일 때 내가 물을 한번 마시면서 테이블을 봤던 기억과 10:7에서 ‘챔피언 포인트’라는 장내 아나운서 멘트를 들었을 때 뿐이다. 우승 직후 꽃가루가 ‘펑’하고 터질 때 조금씩 실감나더라. 항상 우승자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꽃가루 한번 맞아보나’ 했는데, 정말 기뻤다. 아마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지 않을까.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결승 마지막 7세트 1:7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공격기회가 왔을 때 아들 생각이 났다. 보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보미랑은 함께 살아서 축구선수인 아들(고3)에게 유독 미안한 마음이었다. 항상 훈련때문에 집을 떠나 있어서다. 우리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싶었다.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더 집중했다.

나에게 당구는 수학문제와 같다. 어떤 난구라도 어느 정도는 답이 나온다. 그 해법을 힘과 당점, 회전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특히 마지막 세트에서는 그 배합을 조절하는 ‘감’이 너무 완벽했던 것 같다.

김병호는 딸 보미를 향해 "애교없고 무뚝뚝한 딸"이라면서도 "우승한 뒤에  이렇게 인터뷰도 같이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고, 대화도 많이 늘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병호는 딸 보미를 향해 "애교없고 무뚝뚝한 딸"이라면서도 "우승한 뒤에 이렇게 인터뷰도 같이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고, 대화도 많이 늘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서 보여준 특유의 무심한 표정과 터벅걸음 등을 얘기하는 팬들이 많다. =(웃으면서)내가 정말 마음이 편할 때 나오는 동작이다. 이번 대회 유난히 마음이 편하더라. (김보미는 “아빠가 공을 정말 잘 칠 때 모습이에요”라며 웃었다.)

▲이번 대회 우승은 어느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우승 원동력은.

=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다. 앞서 말했듯 이번 대회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 파파콘스탄티누(32강), 마민캄(16강), 임준혁(8강), 쿠드롱(4강) 등 이번 대회에서 만난 상대들은 모두 나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다. 강한 선수들을 상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점수차가 조금이라도 나면 스스로 주눅들고, 조급해진다. 심하면 경기를 반포기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앞서나가고 있더라도 작은 흔들림이 패배로 직결된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질 때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스스로 마인드컨트롤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료 선수들이 ‘국가대표’라 부를 정도로 평소 연습에 매진한다던데.

=선수생활 10년간 큐를 잡지 않은 날은 열흘도 안 될 거다. 대회에서 지고 오면 경기에서 힘들어 했던 배치를 연습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나는 당구선수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더 노력해야 한다. 보미와 밤새 연습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간 적도 많았다.

▲결승전 적재적소에 터진 뱅크샷이 인상적이었다. (김병호의 결승전 득점 가운데 뱅크샷 비율은 31%에 달했다. 대회평균은 22%.)

=뱅크샷은 힘조절이 관건인데, 결승전에서 힘 조절이 워낙 잘됐다. 평소에도 뱅크샷 당점이나 회전 등을 많이 연구했다.

▲김보미는 어떤 딸인가.

=애교없고 무뚝뚝한 딸이다. 하하. 아빠한테 당구를 배우다보니 보미가 더 스트레스받는거 같다. 말도 잘 안하고. 그래도 눈빛만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우승한 뒤에 이렇게 인터뷰도 같이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고 대화도 많이 늘었다. 정말 좋다.

'젊은아빠' 김병호와 '아기' 김보미.(사진=김병호)
'젊은아빠' 김병호와 '아기' 김보미.(사진=김병호)
▲(김보미에게) 반대로 김병호는 어떤 아빠인가. =아빠는 엄격했다. 항상 불편하고 무섭고.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어릴 때 다정했던 아빠 모습이 전혀없어서 서운했다. 그래도 이제는 아빠가 나를 위해 엄격했고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는 걸 이해한다.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무조건 아빠 덕이다.

▲김보미 동료 여자 선수들이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따른다고.

=다들 딸같으니까. 보미 또래에 보미만큼 실력을 갖고 있다면 지금까지 보미가 겪었던 힘든 것들을 다 이겨내면서 성장했을테니까. 어린 나이에 자유롭게 놀지도 못했을 거다.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있다. 보미와 친한 선수들이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부르더라. 어느새 보미 또래 여자선수들의 ‘대부’가 됐다. 하하.

김병호가 "웰뱅-웰컴저축은행 PBA 챔피언십" 우승 시상식 후 김보미의 여자 동료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병호가 "웰뱅-웰컴저축은행 PBA 챔피언십" 우승 시상식 후 김보미의 여자 동료선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하 김보미 질문)이번 대회 4강에 올랐다. 아빠 우승에 가려져 아쉽진 않나. =전혀 아니다. 요즘 아빠를 보면 아빠의 인생을 찾은 것 같아 너무 뿌듯하다. 내가 우승했을 때 아빠가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고. 자다가도 축하전화받으며 잠결에 감사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아빠는 항상 딸을 위해 살아왔다. 아빠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셨기 때문에 이만큼 해줬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여전히 ‘보미 아빠’로 불리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아빠가 ‘프로당구선수 김병호’로 당당하게 살았으면 한다.

▲결승전 때 관중석에서 펑펑 울던데.

=처음엔 나도 그렇게 울 줄 몰랐다. 하하. 결승전도 즐기려는 마음으로 아빠를 응원했는데 마지막 세트부터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1:7로 지고 있을 때 잡은 공격기회에서 ‘이번에 10점 못치면 우승 못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한번에 끝낼 수 있게 계속 기도했다. 그런데 진짜 한번에 경기를 끝내더라. 1~2점 남았을 때 감정이 너무 북받쳐 눈물이 흘렀다.

▲그간 기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LPBA에서는 아쉬운 성적이었는데.

=프로 이전엔 우수한 성적을 냈으니 LPBA에서 자신있었다. 그런데 내심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나 보더라. 아직 내가 이렇게 큰 무대에 설 만한 준비가 안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1~2차투어 이후에는 주위분들게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당구에 흥미를 잃으면서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극복했나.

=LPBA투어 3차전 4강에 오르면서 슬럼프를 조금씩 극복했던 것 같다. 당시 대회에서도 많이 힘들었는데 좋은 성적이 따르니까 ‘어?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되겠는데’ 싶더라. 그때부터 성적이 어떻든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는 올해부터 연습장을 옮겼는데, 군포 산본동에 있는 박광열(PBA) 선수 구장으로 옮겼다. 지금까지 아빠한테만 당구를 배우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니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당구가 더 재미있어졌다.

"하하 어색하네요" 김보미의 어깨에 손을 올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김병호는 어색하다는 듯 웃었다. 김보미도 쑥쓰러운 듯 웃고 있다.
"하하 어색하네요" 김보미의 어깨에 손을 올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김병호는 어색하다는 듯 웃었다. 김보미도 쑥쓰러운 듯 웃고 있다.
▲‘PBA파이널’에도 부녀가 동반 진출했다. 각오는. =(김병호)이번 7차전에서 느낀 집중력을 파이널에서도 이어가 볼 참이다. 물론 최고의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니 첫 경기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우승 당시의 감을 또한번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김보미)이번 7차전에서 4강진출하며 ‘이기는 방법’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남은 기간 최대한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

▲서로의 성적을 예상하자면.

=(김보미)강한 선수들이 많은데, 그래도 최근에 우승했으니 그래도 16강에서 8강 정도 하지 않을까.

=(김병호) 우리 보미는 우승할 거다. 하하. 파이널에서 동반우승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최선을 다하겠다. [samir_@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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