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기에 마지막 챔피언샷이 성공했을 때 관중석은 감동의 도가니였고, 딸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병호 선수뿐 아니라 현장에서든 TV로든 그 경기를 본 사람도 승자였다.
7차전 우승으로 김병호는 많은게 달라졌다. 다음시즌 1부투어 잔류를 걱정해야 했으나 단숨에 랭킹7위로 올라섰고, 상금상위 32명만 출전하는 PBA 파이널 티켓도 확보했다.
김병호-보미 ‘당구부녀’ 인터뷰는 우승 이후 고향(대구)을 다녀오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인해 4일에야 이뤄졌다. 서울 논현동 브라보캐롬클럽에서 만난 부녀는 방송녹화를 마치고 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가족파티 분위기가 궁금하다.
=지금까지는 항상 딸 보미가 우승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왔기 때문에 보미를 많이 반기셨는데, 이번엔 저에게 특히 고생했다고 해주시더라. 하하. 제가 2남2녀 막내인데 특히 당구를 좋아하는 형님이 정말 기뻐하고 축하해주셨다.
▲결승전을 되짚어보자면.
=사실 내가 어떻게 결승전을 치렀는지, 어떤 공을 쳤는지 기억이 잘 안나 대회 후에 영상을 통해 다시 경기를 봤다. 결승전때 기억나는 건 마지막 세트서 7:7 동점일 때 내가 물을 한번 마시면서 테이블을 봤던 기억과 10:7에서 ‘챔피언 포인트’라는 장내 아나운서 멘트를 들었을 때 뿐이다. 우승 직후 꽃가루가 ‘펑’하고 터질 때 조금씩 실감나더라. 항상 우승자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꽃가루 한번 맞아보나’ 했는데, 정말 기뻤다. 아마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지 않을까.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결승 마지막 7세트 1:7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공격기회가 왔을 때 아들 생각이 났다. 보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보미랑은 함께 살아서 축구선수인 아들(고3)에게 유독 미안한 마음이었다. 항상 훈련때문에 집을 떠나 있어서다. 우리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싶었다.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더 집중했다.
나에게 당구는 수학문제와 같다. 어떤 난구라도 어느 정도는 답이 나온다. 그 해법을 힘과 당점, 회전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특히 마지막 세트에서는 그 배합을 조절하는 ‘감’이 너무 완벽했던 것 같다.

▲이번 대회 우승은 어느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우승 원동력은.
=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다. 앞서 말했듯 이번 대회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 파파콘스탄티누(32강), 마민캄(16강), 임준혁(8강), 쿠드롱(4강) 등 이번 대회에서 만난 상대들은 모두 나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다. 강한 선수들을 상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점수차가 조금이라도 나면 스스로 주눅들고, 조급해진다. 심하면 경기를 반포기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앞서나가고 있더라도 작은 흔들림이 패배로 직결된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질 때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스스로 마인드컨트롤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료 선수들이 ‘국가대표’라 부를 정도로 평소 연습에 매진한다던데.
=선수생활 10년간 큐를 잡지 않은 날은 열흘도 안 될 거다. 대회에서 지고 오면 경기에서 힘들어 했던 배치를 연습했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마음이 편했다. 나는 당구선수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더 노력해야 한다. 보미와 밤새 연습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간 적도 많았다.
▲결승전 적재적소에 터진 뱅크샷이 인상적이었다. (김병호의 결승전 득점 가운데 뱅크샷 비율은 31%에 달했다. 대회평균은 22%.)
=뱅크샷은 힘조절이 관건인데, 결승전에서 힘 조절이 워낙 잘됐다. 평소에도 뱅크샷 당점이나 회전 등을 많이 연구했다.
▲김보미는 어떤 딸인가.
=애교없고 무뚝뚝한 딸이다. 하하. 아빠한테 당구를 배우다보니 보미가 더 스트레스받는거 같다. 말도 잘 안하고. 그래도 눈빛만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우승한 뒤에 이렇게 인터뷰도 같이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고 대화도 많이 늘었다. 정말 좋다.

▲김보미 동료 여자 선수들이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따른다고.
=다들 딸같으니까. 보미 또래에 보미만큼 실력을 갖고 있다면 지금까지 보미가 겪었던 힘든 것들을 다 이겨내면서 성장했을테니까. 어린 나이에 자유롭게 놀지도 못했을 거다.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있다. 보미와 친한 선수들이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부르더라. 어느새 보미 또래 여자선수들의 ‘대부’가 됐다. 하하.

▲결승전 때 관중석에서 펑펑 울던데.
=처음엔 나도 그렇게 울 줄 몰랐다. 하하. 결승전도 즐기려는 마음으로 아빠를 응원했는데 마지막 세트부터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1:7로 지고 있을 때 잡은 공격기회에서 ‘이번에 10점 못치면 우승 못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한번에 끝낼 수 있게 계속 기도했다. 그런데 진짜 한번에 경기를 끝내더라. 1~2점 남았을 때 감정이 너무 북받쳐 눈물이 흘렀다.
▲그간 기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LPBA에서는 아쉬운 성적이었는데.
=프로 이전엔 우수한 성적을 냈으니 LPBA에서 자신있었다. 그런데 내심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나 보더라. 아직 내가 이렇게 큰 무대에 설 만한 준비가 안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1~2차투어 이후에는 주위분들게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당구에 흥미를 잃으면서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극복했나.
=LPBA투어 3차전 4강에 오르면서 슬럼프를 조금씩 극복했던 것 같다. 당시 대회에서도 많이 힘들었는데 좋은 성적이 따르니까 ‘어?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되겠는데’ 싶더라. 그때부터 성적이 어떻든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는 올해부터 연습장을 옮겼는데, 군포 산본동에 있는 박광열(PBA) 선수 구장으로 옮겼다. 지금까지 아빠한테만 당구를 배우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니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당구가 더 재미있어졌다.

=(김보미)이번 7차전에서 4강진출하며 ‘이기는 방법’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남은 기간 최대한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
▲서로의 성적을 예상하자면.
=(김보미)강한 선수들이 많은데, 그래도 최근에 우승했으니 그래도 16강에서 8강 정도 하지 않을까.
=(김병호) 우리 보미는 우승할 거다. 하하. 파이널에서 동반우승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최선을 다하겠다. [samir_@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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