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시장은 이제 진성골퍼 위주로 재편되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MZ세대와 팝업스토어가 넘쳐나는 성수동에서 골프 브랜드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왜일까.

성수동. 지명을 넘어 이제는 트렌드가 된 단어다. 성수동 카페, 성수동 맛집, 성수동 팝업, 성수동 쇼핑…. 성수동은 ‘힙’을 상징하는 일종의 수식어가 됐다. MZ세대와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글로벌 패션하우스부터 서브컬처 굿즈까지 만날 수 있는 ‘팝업’의 성지. 그런데 골프 브랜드는 왜 성수동으로 향하는 걸까.

팝업스토어의 격전지 성수에 골프 브랜드도 가세
성수동은 독특한 동네다. 한때 이곳은 인쇄소와 자동차 정비소, 수제화와 섬유 공장이 들어선 공업 지역이었다. 산업의 쇠퇴로 방치된 오래된 공장과 창고 건물에 카페와 숍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부터 변화는 찾아왔다.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거친 공장지대의 분위기는 성수동만의 매력으로 작용했다. 강남과 인접한 접근성,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는 소규모 창업자나 실험적인 콘셉트의 브랜드들을 불러들이는 요소였다.
지난해 영국의 여행문화잡지 <타임아웃>은 성수동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World’s Coolest Neighbourhood)’ 4위로 꼽았다. 성수동은 예술가, 디자이너, 스타트업이 모여드는 문화 허브로 변모했다. 주목할 것은 성수가 MZ세대의 ‘놀이터’가 됐다는 점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MZ 세대들은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길 즐긴다. 이러한 소비층 성향은 팝업스토어의 한정된 시간과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공장과 창고로 쓰이던 넓고 개방된 공간은 임시 매장을 열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업계에 의하면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열리는 팝업스토어는 월평균 100여 개에 이른다. 팝업스토어 전문기업 스위트스팟이 발표한 ‘2024 팝업스토어 트렌드 리포트ʼ에 따르면 서울 주요 지역 중 성수동이 팝업스토어 오픈 빈도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업계도 이 같은 흐름에 뒤지지 않는다. 무신사와 ‘온 더 웨이 컬렉션ʼ을 출시한 테일러메이드, 코드케이오스25 론칭 행사를 개최한 아디다스골프, 엔씨소프트 ‘리니지M’과 ‘MASTERPIECE’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PXG, 골프웨어에 스트리트 감성을 믹스한 러셀르노 등이 작년 한해 성수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MZ세대와 접점 넓히고 글로벌 고객에 눈도장 찍고
최근엔 왁이 성수에 ‘팝업’을 오픈했다.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간 운영한 ‘왁X존스 팝업스토어’다. ‘존스(JONES)’는 1971년 미국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탄생한 골프용품 전문 브랜드. 왁은 존스와의 여섯 번째 협업을 기념해 첫 팝업 공간을 준비했다. 이번 협업은 ‘존스와 함께하는 여행(Journey To Peace With JONES)’을 콘셉트로 캐주얼한 감성의 제품들을 선보였다. 존스를 대표하는 골프백을 비롯해 맨투맨 티셔츠, 아노락, 점프수트와 뉴에라(NEW ERA) 골프캡 등 젊은 층을 겨냥한 스트리트 감성의 실용적인 아이템들이 주를 이룬다.
팝업스토어 외관은 존스의 창업자 조지 존스의 스토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택시기사였던 조지 존스는 자신의 택시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팔며 사업을 시작했다. 팝업스토어는 택시와 연관된 주유소를 본떠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로 꾸몄다. 그린 & 오렌지 컬러와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외관은 자연스레 방문객들의 포토 스폿이 됐다.
팝업스토어를 통해 MZ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고 신규 고객층을 확보하겠단 왁의 전략은 주효했다. 왁X존스 팝업스토어가 오픈 한 달 만에 약 3200명의 누적 방문객을 기록한 것. 글로벌 마케팅 효과도 봤다. 방문객 중 해외 고객의 비중이 약 60%를 차지했다. 외국인과 해외 관광객의 방문이 잦은 성수동 상권의 이점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왁 관계자는 “팝업스토어의 인기로 왁X존스 컬렉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 신장했다”라며 “성수동의 트렌드에 걸맞은 공간 기획과 상품 구성이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성수’라는 지역적 상징성에 주목해 터 잡은 골프 브랜드들
볼빅어패럴은 지난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성수동에서 ‘RE-BORN 2025’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볼빅어패럴을 전개하는 위비스는 성수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볼빅어패럴 브랜드마케팅팀 조혜경 팀장은 성수의 지역적 상징성에 주목했다. “성수동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부터 유명 아티스트 쇼케이스 등 팝업스토어의 성지가 된 지는 이미 꽤 됐다. 볼빅어패럴은 브랜드의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을 성수라는 지역적 상징성에 부합시키고자 했다. 골프웨어도 패션이기에 트렌디함은 필수다. 퍼포먼스와 라이프스타일의 경계를 넘나드는 확장성을 추구하는 볼빅어패럴에게 성수는 단순한 지역이 아닌 브랜드 지향점과 맞닿아 있는 ‘뉴 스탠더드(New Standard)’다.”
볼빅어패럴은 ‘RE-BORN 2025’에서 2025 F/W 시즌 신제품을 선공개함과 동시에 K-골프 리딩 브랜드로 도약하려는 전략적 행보를 보여줬다. 성수라는 지역이 가진 글로벌 지향성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성수의 지역적 특성에 주목한 브랜드는 또 있다. 2023년 성수동에 터를 잡은 타이틀리스트다. 타이틀리스트는 ‘타이틀리스트 시티 투어밴’을 아예 성수동으로 옮겨 왔다. 타이틀리스트 시티 투어밴은 리얼 골퍼를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 공간으로 2층 단독 건물, 총 300여 평 규모다. 이곳에선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클럽과 용품의 워런티 서비스를 도심 한복판에서 보다 편하게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타이틀리스트 시티 투어밴을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플래그십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오직 한국 골퍼만을 위한 프리미엄 골프백 컬렉션 ‘링스레전드 인피니티 시리즈ʼ의 출시 기념 행사를 열었다. 타이틀리스트 관계자는 “골프를 라이프스타일로 즐기는 열정적인 골퍼와 성수동이 접점을 지닌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한다.
골프 브랜드들은 성수동의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젊고 트렌디한 고객층을 공략하고 있다. 성수는 혁신적인 시도와 잠재 고객 발굴을 위한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동네에서 앞으로 어떤 골프 브랜드가 새롭게 골퍼들과 만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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