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 10일. 한국프로골프(KPGA) 시즌 최종전 투어챔피언십 4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온 김백준의 표정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의 순위는 공동 40위. 반면 신인왕 경쟁을 펼치던 송민혁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순식간에 신인왕 레이스 선두가 바뀌는 순간. 하반기 내내 선두를 달리던 김백준의 이름이 2위로 내려갔다. 김백준은 송민혁이 생애 단 한 번뿐인 신인상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자존심도 상했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실망했다. 시즌을 마치자마자 쉴 틈도 없었다. 김백준은 바로 스페인 무르시아 지역으로 날아가 두 달 반 동안 칼을 갈았다. 그리고 긴 겨울이 끝나고 5개월 만에 시작된 KPGA 투어 2025시즌 개막전. 설욕을 다짐하며 절치부심의 자세로 겨우내 샷을 갈고닦은 김백준은 전혀 다른 선수가 돼서 돌아왔다.
20일 강원 춘천의 라비에벨 골프앤리조트 올드코스(파71)에서 열린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 4라운드에서 김백준은 살얼음판 같은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신인상을 놓친 이후 열린 첫 대회에서 차지한 우승. 프로골퍼에게 가장 중요한 보기 후 곧바로 버디를 잡아내는 '바운스백'에 성공한 김백준은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제 김백준의 이름 앞에는 '신인상 2위' 'SK텔레콤 준우승' 대신 'KPGA 2025시즌 개막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됐다. 우승상금 2억원은 겨우내 흘린 땀의 보상이었다.
생애 첫 승리를 달성한 김백준은 "먼저 늘 도와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개막전에서 우승할 줄 몰랐는데 정말 기쁘고 나 자신에게 대견스럽다"고 소감을 말한 뒤 "시즌 목표를 3승으로 잡았다. 개막전에서 우승하면서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그렇지만 아직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우승을 앞으로 골프 선수로서 활동하는 데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자만하지 않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더 발전된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국가대표 출신인 김백준은 실력도 출중했다. 오히려 첫 우승이 늦은 감이 들 정도다. 2019년 전국체전 개인전 금메달을 땄고 2021년 아마추어 초청선수로 출전한 KPGA 투어 특급 대회 SK텔레콤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래 동료들이 너무 강했다. 아마추어 때 K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골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장유빈과 조우영의 그늘에 늘 가렸다. 또 장유빈과 조우영이 우승자 특전으로 KPGA 투어에 직행한 것과 달리, 김백준은 2부 투어를 거쳐 지난해 KPGA 투어에 입성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2020~2021년 박준홍, 송민혁, 조우영, 장유빈 등과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그런데 함께 라운드를 나가면 내가 제일 못 쳤다. 이런 상황은 프로에 입회한 2022년까지 지속됐고 고민이 너무 많아지면서 슬럼프가 왔다"고 돌아본 그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골프를 놓고 일상을 회복하면서 모든 것이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김백준은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동계훈련 동안 장기인 아이언샷을 가장 살릴 수 있게 드라이버샷 비거리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김백준은 "스윙 스피드를 늘리며 지난해에 비해 평균적으로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15~20m 정도 증가했다. 또 거리를 내기 위해 체중도 3~4㎏ 늘렸다"고 설명했다. 목표는 성공. 이번 대회 2라운드에서는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311야드나 됐다.
'김백준 시대'를 열 준비를 마친 그는 "내 최종 목표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이다. PGA 투어 진출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PGA 투어에서도 살아남고 좋은 선수로 남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좋은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올해 제네시스 대상을 받아 PGA 투어 Q스쿨 최종전에 진출권을 받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옥태훈과 함께 합계 9언더파 275타로 공동 2위에 오른 이상희는 이날 개인 첫 KPGA 투어 홀인원을 성공시키며 1600만원 상당의 베오랩18 스피커를 부상으로 받아 생일의 기쁨이 배가됐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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