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명종(44‧인천시체육회)은 대표적인 늦깎이 당구선수다. 다른 선수같으면 한창 꽃피울 나이인 38세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당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한양대 화학공학과 석사 출신인 그는 대학원 졸업 후 제약회사 연구부에서 7년동안 근무하다 2013년 퇴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수원당구연맹에 선수로 등록했다. 그때가 35세였다. 당구선수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 직장을 나왔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 무렵 태어난 두 아들 육아 등으로 당구에 전념할 수 없었다. 2016년이 돼서야 제대로 당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었다.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현재 대한당구연맹 선수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21년에는 전국대회에서 첫 우승(천년의빛 영광전국당구대회)을 차지하기도 했다.
세계무대에서도 점차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라스베가스3쿠션월드컵에선 처음 32강 본선에 올랐다. 3쿠션월드컵 11번의 도전 끝에 거둔 성과다. 그리고 4년만에 열린 서울3쿠션월드컵에서 차명종은 더 이상 ‘복병’이 아닌 ‘강호’로서 자리매김했다. 사메 시돔(32강리그) 김행직(16강) 세미 사이그너(8강)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차례로 이겼으며, 4강전에서는 ‘제2의 야스퍼스’라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의 신성 그웬달 마르쉘을 제압했다.
비록 결승에서는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에게 패했으나 세계무대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서울3쿠션월드컵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대회 내내 꿈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결승전이 아쉽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대회 전에는 어느정도 성적을 예상했나.
=32강 본선에 오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차명종은 지난3월 ‘라스베가스3쿠션월드컵’서 처음 32강 본선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본선에만 올라가자는 생각이었다.
▲이번 대회서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을 꼽자면.
=라스베가스3쿠션월드컵서 처음 32강 본선리그에 올랐는데, 3전전패를 당했다. (차명종은 당시 세미 사이그너, 트란퀴엣치엔, 강자인에 잇달아 패해 3패 조4위로 탈락했다) 본선무대가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압박감이 상당히 심했다. 그 뒤로 생각을 많이 하는 등, 심리적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 친하게 지내는 강동궁 선수가 “시합에서도 평상시 연습 때처럼 칠 수 있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벼운 몸 마음 상태를 만들라”고 조언해 줬다.
개인적으로 당구는 ‘멘탈’이 굉장히 중요한 스포츠라 생각한다. 기술적인 부분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심리상태가 70% 이상 경기를 좌우한다고 본다. 이번 대회서는 이런 멘탈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대비한 게 효과를 봤다.
▲강동궁 선수와는 인연이 각별하다고. (강동궁 선수는 결승전 때 끝까지 자리를 지켜며 응원했다)
=내가 당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계기가 되준 인물이다. 과거 회사생활할 때 내가 다니던 안산 당구장에 강동궁 선수가 한번 온 적 있는데, 당시 강동궁 선수 플레이를 보고 엄청난 실력차를 느꼈다. 그땐 나도 그 지역에서 적수가 없는 수준이어서 강동궁 선수를 보기 전까지는 내가 제일 잘 치는 줄 알았는데, 하하.
또 한번은 내가 퇴사를 결정할 무렵, 강동궁 선수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 있다. ‘내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강동궁 선수가 “노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하더라. 내게는 이 한 마디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 이후로 당구에 올인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직장을 그만둘 때 아내가 반대하지 않았나.
=반대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아내와 나는 제약회사 ‘사내커플‘이다. 아내는 생명공학연구원, 나는 합성연구원이었다. 제약회사 특성상 유해물질에 노출될 염려가 많았고, 실제로 아내와 나 둘 다 건강에 이상을 느낀 적도 있다. 그래서 아내는 나중에 임신할 때 영향이 있을까봐 나보다 먼저 퇴사한 상태였다. 또 회사 다닐 때 호프집 두 개와 당구장 하나를 운영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무리가 없었다.

▲결국 결승에서 산체스를 만나게 됐다.
=그렇게 됐다. 내가 바라던 바가 이뤄졌다. 결승전 끝나고 산체스에게 “설욕해서 좋겠다”고 하자 산체스가 “아직 아니다. 이제 1:1 동점이다. 다음에도 결승에서 보자. 그때 제대로 이겨주겠다”고 해 함께 웃었다.
▲과거 ‘꼭 이기고 싶은 선수’로 김행직을 꼽은 적 있는데, 이번에 이겼다. (16강전서 50:32(36이닝) 승)
=공식대회서 처음 이겼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김행직 선수는 다 알다시피 정말 대단한 캐리어를 지닌 ‘큰 그릇’의 선수다.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동생이지만 존경하는 선수다. 김행직 선수랑 경기하면 도저히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다. 득점 폭발력도 엄청나고, 심리까지 안정적이다. 그런 김행직 선수를 16강서 이기고 나니 처음으로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추진력을 얻어 (세미) 사이그너, (그웬달) 마르쉘까지 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당구선수로서 롤모델을 꼽자면.
=내 당구인생에 영감을 준 강동궁 선수와 내가 당구를 시작할 때부터 우러러봤던 김재근 선수다. 김재근 선수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인성적인 면에서도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
▲서울3쿠션월드컵을 포함해 최근 성적이 상승세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큐를 바꾼 게 통했다. 최근 큐 세팅을 새로 했다. 큐 무게부터 밸런스, 굵기와 팁 강도 등을 모두 공들여 바꿨더니 큐를 더욱 정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큐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됐다. 둘째로는 최근 인천시체육회로 둥지를 옮기며 경제적인 측면을 비롯해 환경적으로 안정감이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훈련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성적도 좋아진거 같다.
▲유난히 큐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큐는 경기력에서 막대한 지분을 차지한다. 큐에 따라 내가 쓸 수 있는 힘과 공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평소 큐를 연구하고, 주변에 큐에 대한 조언을 자주 구하기도 한다.
▲현재 쓰고 있는 용품은.
=큐를 비롯한 대부분 용품을 ‘빌킹’ 제품을 쓴다. 현재 ‘빌킹코리아’ 선수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최근 유튜브채널 ‘빌리퀸’에서 하차했는데. (차명종은 서울3쿠션월드컵 한달 전, 3년 동안 활동해온 빌리퀸 채널에서 하차했다)
=나는 미디어 도움을 많이 받은 케이스다. 성적에 비해 유명세를 많이 얻게 돼 ‘빌리퀸’에 각별히 고맙다. 그러나 최근에 유튜브같은 매체를 통하기 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과감히 빌리퀸을 내려놨다. 서울3쿠션월드컵 한달 전에 “챔피언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하차했는데 진짜로 한달 만에 다시 돌아갈 뻔 했다. 하하.

▲최종 목표는.
=세계선수권 우승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가려면 국내대회 랭킹이 받쳐줘야 한다. 앞으로 국내대회에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또 아시안게임, 세계팀선수권 등에서 국가대표 자격으로 활약해 보고 싶기도 하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