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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장치'가 우주시대 열었듯…과잉 교육도 때론 필요 [김정민의 영어 너머 원더랜드]

탐사선·망원경 등 우주장비엔
동일한 기능장치 겹겹이 탑재
낭비처럼 보여도 '안전장치'역
삶이란 우주에도 과한 대비 필요
아이 때 많은 교육·경험 쌓아야

  • 기사입력:2025.04.22 16:08:18
  • 최종수정:2025.04.22 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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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의 마셜우주비행센터에서 한 우주공학자가 제임스웹 망원경을 점검하고 있다.  NASA
NASA의 마셜우주비행센터에서 한 우주공학자가 제임스웹 망원경을 점검하고 있다. NASA
'멍청비용'이라는 단어가 있다. 교육자로서 쓸 단어는 아니지만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어 양해를 구하고 쓴다. 돈을 아끼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와야 했다든지, 호텔이나 비행기 날짜를 착각해서 예약하는 바람에 피 같은 수수료를 날리는 경우에 쓴다.

멍청비용을 영어로는 'redundancy'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불필요한 중복' 혹은 '과잉'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단어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유래가 된 라틴어는 redundantare인데, 이는 're(다시)'와 'undare(물결치다)'의 합성어다. 다시 물결이 친다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흘러넘치도록 넉넉히 채워진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단어에서 인생의 지혜를 본다. 인생에는 얼핏 쓸모없어 보여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지금은 중복이나 낭비로 여기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준비된 여유이자 일종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철학이 실제로 적용되는 대표적 분야가 우주 개발이다. 제임스웹 망원경(JWST) 이야기를 해보자. 이 망원경은 핵심 시스템마다 redundancy가 적용됐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예비 장치를 여러 겹 탑재한 것이다. 이런 '낭비'의 이유가 흥미롭다. 단 하나의 고장에도 전체 임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 복잡성과 무게 증가로 발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지만 이 redundancy야말로 제임스웹 운용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주 장비는 한번 지구를 떠나면 수리도 회수도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가능성을 담아야 하는 세계, 그게 바로 우주 탐사다.

실제로 15년의 설계 수명을 갖췄던 허블 망원경은 30년 가까이 운용됐고,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는 예정된 90일보다 무려 15년이나 더 작동했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발사 이후 지금도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모든 장비에는 redundancy가 적용돼 있었고 투자 대비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냈다.

우리 삶에도 때론 중복 설계가 필요하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유아기와 초등기가 특히 그렇다. 이 시기의 정서와 습관, 문제 해결력은 평생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많은 부모님이 하는 실수가 이 시기를 '효율'과 '최적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특정 시기에는 교육 과잉이 필요하다.

더 일찍, 더 많이 지원해줄수록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우주망원경의 redundancy처럼 말이다.

혹자는 "결국 학원을 많이 보내라는 이야기 아닌가요?"라고 물을지 모른다. 아니다. 교육비를 얼마나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대화, 관심, 경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설계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의 인생은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우주와 같다. 영화 '슈퍼맨'에서처럼 행성이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 홀로 우주선에 태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단 하나의 생명이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안전장치와 예비장치를 다 달아주지 않겠는가. 엄마·아빠의 사랑과 지식과 좋은 추억을 가득 담아주지 않겠는가.

때론 '넘침'이야말로 사랑이고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대,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과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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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W영어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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