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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수사 진행 안된 성폭력 피해자 신상유포, 처벌불가”

여자친구 나체 사진·영상 유포 男 1·2심 이어 대법원도 징역 6년 피해자 인적사항 유포 혐의는 무죄

  • 박홍주
  • 기사입력:2025.10.01 14:52:21
  • 최종수정:2025.10.01 14: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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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나체 사진·영상 유포 男
1·2심 이어 대법원도 징역 6년
피해자 인적사항 유포 혐의는 무죄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성폭력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유포했더라도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성폭력처벌법상 비밀준수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혐의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비밀준수 위반 혐의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A씨는 지난 2019년부터 6년 동안 피해자와 교제하면서 피해자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이나 성행위 영상을 촬영한 뒤 이를 3년 넘는 기간 동안 X(옛 트위터)·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로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유포는 교제 당시부터 헤어진 이후까지도 계속됐다.

A씨는 피해자의 사진 및 영상을 SNS를 통해 타인에게 전송한 뒤 남성 성기 등을 합성한 음란물로 돌려받아 저장한 혐의도 받았다. A씨에게 사진을 받은 B씨가 피해자의 사진 위에 자신의 성기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A씨에게 전송하는 식이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실명, 나이, 직업 등 인적사항도 함께 유포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불특정 다수 및 피해자의 지인, 가족까지 피해자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 및 편집물을 접하기에 이르렀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을 것은 물론, 인격적 살해에 가까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A씨를 용서하지 않고 엄벌을 탄원했다고도 덧붙였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1, 2심과 대법원 모두 A씨가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유포한 행위는 무죄로 판단했다.

비밀준수 위반 혐의를 규정한 성폭력처벌법 제24조는 피해자를 ‘수사 또는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진행됐던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수사나 재판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더라도 이 법 조항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성폭력처벌법 제24조 제2항은 ‘누구든지 제1항에 따른 피해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신문 등 인쇄물에 싣거나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때 제1항은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등은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사진 등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인적사항 누설 금지를 규정한 공무원 등은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이 없었다면 누설할 정보를 입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이 법 조항이 규정한 ‘피해자’는 관련 수사나 재판이 진행된 경우에 국한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를 ‘모든 성폭력범죄 피해자’로 확장해 해석하는 것은 명문 규정을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는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호대상으로서 성폭력처벌법 제24조 제2항에 규정된 ‘제 1항에 따른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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