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법복을 입고 매일경제와 만난 이탈리아 베테랑 셰프 브루노 칭골라니(65)는 8일(현지시간) 미국 출신인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 교황이 선출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누구보다 아꼈던 이탈리아인들이기에 낮은 곳을 섬겼던 교황의 정신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역대 교황과 인연이 깊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아꼈던 요리사로 해외 순방 때 동행하곤 했다. 그가 만든 디저트에 감동한 교황이 그의 뺨을 아들처럼 따뜻하게 어루만졌던 기억도 특별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도 "파스타와 빵은 식탁에 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밥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분"이라며 "물과 밀가루, 효소만 있으면 만드는 빵은 교회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음식이다. 가난한 이들을 먹여 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요리 인생도 낮은 곳에서 시작됐다. 아홉 살에 식당 설거지를 시작하며 3년 동안 그릇만 닦았고, 이를 인정받아 열두 살에 첫 월급을 받았다. 학력을 쌓지는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청년 시절 셰프로 일했던 이탈리아 북서부 지역 아스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인근 도시인 알바시에서 그는 얼마 전까지 전 세계 유명인들을 위한 예약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직원과 손님을 소중하게 대하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직원들에게 맛있는 밥을 먹인 뒤 손님을 맞죠. 손님들의 옷을 받아주고 테이블 의자를 빼주고 냅킨을 무릎에 깔아줍니다.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미리 체크하지요."
그는 지난달 말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열린 '피아노섬 축제'에 초청받아 신안에서 갓 잡아 올린 낙지와 신선한 파, 바질 등을 이용해 해물 파스타와 피자를 요리했다. '사찰 음식 1번지'인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방문해 스님들로부터 법복을 선물받기도 했다. "진짜 스님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사방이 다 음식 재료다. 한국인은 정말 복 받았다"며 부러워했다. 또 "한국 사람들은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을 즐기지만, 높은 온도에서 굽다 보니 가장 소화하기 힘든 음식"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코로나 기간 건강 악화로 음식 재료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그다. 비만과 당뇨, 관절염을 겪으며 글루텐이 많이 함유된 밀가루와 우유, 유제품 등을 멀리했다. 그 결과 체중을 줄이며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한국 음식은 소화가 잘되는 나물과 야채가 많더군요. 그래서 밥 대신 빵을 선호하는 한국의 식문화 유행이 안타까워요. 휴게소에 들렀는데 핫도그 등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이 너무 많더군요. 먹는 것이 곧 건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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