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칼싸움부터 국가대표 감독까지
‘발 펜싱’ 전략…한국 펜싱 세계 2위 견인
“장성, 스포츠 강군 성장할 수 있는 도시”

“장성군 체육 발전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펜싱 국가대표팀 총감독 김용율(전남도청 펜싱팀)이 제64회 전남체전 성화봉송의 마지막 주자로 고향 장성을 찾았다.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뒷동산에서 나뭇가지로 칼싸움 놀이를 하던 개구쟁이였던 그는, 수십 년 뒤 펜싱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다시 고향의 마을길을 달렸다. 이번 체전을 계기로 장성이 스포츠 도시로 도약하길 바란다는 그의 한마디는, 한 개인의 회고이자 지역 체육의 미래에 대한 진심 어린 염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우연히 펜싱과 인연을 맺게됐다. 어릴 적부터 운동 감각이 뛰어나 초등학생 시절 장성군 축구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북하면 출신으로는 혼자 차출된 탓에 타 지역 선수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축구를 그만뒀다.
아쉬워하던 체육교사가 제안한 종목이 바로 펜싱이었다. ‘딱 6개월만’이라는 조건으로 시작한 펜싱은 단 몇 달 만에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이뤄냈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전국소년체전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거두며 체육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광주체육고등학교와 한국체육대학교를 거쳐 대학교 3학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김 감독의 저력은 선수 시절보다 오히려 지도자로서 더욱 빛났다. 1996년까지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면서 외국 선수들과의 실력 차이를 실감한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 전환점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는 ‘상대가 한 번 움직일 때 우리는 두세 번 움직여야 한다’는 전략 아래 ‘발 펜싱’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도입했다. 이는 체력 중심의 훈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은 해당 대회에서 펜싱 종목 금메달 12개 중 8개를 휩쓸며 아시아를 제패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지려 했던 김 감독은 곧장 다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준비에 투입되면서다. 그리고 이 대회는 한국 펜싱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 됐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대한민국은 펜싱 종목에서 세계 2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펜싱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강국으로 도약한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 발굴 능력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잠재력은 있으나 기회가 부족한 선수들, 혹은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며 “그런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명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을 세계적 선수로 길러낸다는 점에서 그는 ‘다크호스를 키우는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김 감독에게 고향 장성 역시 가능성 가득한 ‘다크호스’다. 그는 “장성은 지리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스포츠 발전 잠재력이 크다”며 “이번 전남체전은 장성이 스포츠‧관광 인프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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