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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성화봉송 나선 펜싱 명장 김용율… “장성 스포츠 잠재력 높아”

전남체전 성화봉송 주자 김용율 감독 나뭇가지 칼싸움부터 국가대표 감독까지 ‘발 펜싱’ 전략…한국 펜싱 세계 2위 견인 “장성, 스포츠 강군 성장할 수 있는 도시”

  • 송민섭
  • 기사입력:2025.04.18 13:26:35
  • 최종수정:2025.04.18 13: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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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체전 성화봉송 주자 김용율 감독
나뭇가지 칼싸움부터 국가대표 감독까지
‘발 펜싱’ 전략…한국 펜싱 세계 2위 견인
“장성, 스포츠 강군 성장할 수 있는 도시”
김용율 전남도청 펜싱팀 감독. 장성군 제공.
김용율 전남도청 펜싱팀 감독. 장성군 제공.

“장성군 체육 발전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펜싱 국가대표팀 총감독 김용율(전남도청 펜싱팀)이 제64회 전남체전 성화봉송의 마지막 주자로 고향 장성을 찾았다.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뒷동산에서 나뭇가지로 칼싸움 놀이를 하던 개구쟁이였던 그는, 수십 년 뒤 펜싱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다시 고향의 마을길을 달렸다. 이번 체전을 계기로 장성이 스포츠 도시로 도약하길 바란다는 그의 한마디는, 한 개인의 회고이자 지역 체육의 미래에 대한 진심 어린 염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우연히 펜싱과 인연을 맺게됐다. 어릴 적부터 운동 감각이 뛰어나 초등학생 시절 장성군 축구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북하면 출신으로는 혼자 차출된 탓에 타 지역 선수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축구를 그만뒀다.

아쉬워하던 체육교사가 제안한 종목이 바로 펜싱이었다. ‘딱 6개월만’이라는 조건으로 시작한 펜싱은 단 몇 달 만에 눈에 띄는 실력 향상을 이뤄냈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전국소년체전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거두며 체육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광주체육고등학교와 한국체육대학교를 거쳐 대학교 3학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김 감독의 저력은 선수 시절보다 오히려 지도자로서 더욱 빛났다. 1996년까지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면서 외국 선수들과의 실력 차이를 실감한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 전환점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는 ‘상대가 한 번 움직일 때 우리는 두세 번 움직여야 한다’는 전략 아래 ‘발 펜싱’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도입했다. 이는 체력 중심의 훈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한국은 해당 대회에서 펜싱 종목 금메달 12개 중 8개를 휩쓸며 아시아를 제패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지려 했던 김 감독은 곧장 다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준비에 투입되면서다. 그리고 이 대회는 한국 펜싱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순간이 됐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대한민국은 펜싱 종목에서 세계 2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펜싱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강국으로 도약한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 발굴 능력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잠재력은 있으나 기회가 부족한 선수들, 혹은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며 “그런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명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을 세계적 선수로 길러낸다는 점에서 그는 ‘다크호스를 키우는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김 감독에게 고향 장성 역시 가능성 가득한 ‘다크호스’다. 그는 “장성은 지리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스포츠 발전 잠재력이 크다”며 “이번 전남체전은 장성이 스포츠‧관광 인프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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