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 투입 확대에 따라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생활물가부터 다잡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2차 추경의 초점을 지역화폐 확대를 통한 소비 활성화에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회의 시작과 함께 라면 가격을 언급하며 최근 생활필수품 가격 급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통령이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고 묻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그간 눌러놨던 맥주,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이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크게 올랐다"고 답했다.
최근 물가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위주로 상승했다. 올해 5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각각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3.2%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 1.9%를 훌쩍 웃돌았고, 특히 라면값 상승률은 6.2%에 달했다.
김 차관은 "브라질 등지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서 잘못 대응하면 닭고기 가격 급등 우려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이 없으니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면밀한 대응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며 "현황과 가능한 대책을 챙겨서 다음 회의 이전에라도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다.

2차 추경 규모는 '최소 20조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올해 초 제시한 35조원 규모 추경안에서 1차 추경액(13조8000억원)을 제외한 21조원 이상의 2차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추경도 지난번과 비슷하게 민생과 소비 진작, 경제 회복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며 "전 국민 25만원 소비지원금,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장기 소액 연체자의 채무를 정리할 '배드뱅크' 설립과 소상공인 채무 조정을 돕는 새출발기금 개편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채무 탕감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만큼 지원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앞선 5일 비영리법인 등 시민단체가 개인 금융채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감독 규정 개정에 나섰다. 종전까지 은행, 대부업체, 공공기관 등에 국한됐던 개인금융 채권 인수 자격을 시민단체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4~2018년 장기 연체자 채무 탕감을 위해 설치했던 민간기관인 '주빌리은행' 모델을 참고한 것이다. 당시 주빌리은행은 연체 채권을 싸게 사들인 후 소각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조정해줬다.
배드뱅크와 주빌리은행을 병행 도입해 채무 탕감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는 종전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새출발기금과 대상을 차별화하기 위해 빚 탕감 대상을 장기소액연체자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르면 12일 주요 그룹 총수, 경제단체장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기업 경영 환경을 점검하려는 취지다.
재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삼성, LG, 현대차, SK, 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들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장을 초청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일정을 확인해달라고 요청이 왔다"며 "G7 정상회의 이전에 만남이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다만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출국 중인 상태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재계가 우려하는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직접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책 방향이 분명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도 "기업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요구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 류영욱 기자 / 이소연 기자 / 추동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