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가 7일 단일화 담판을 위해 75분간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굳은 표정으로 각자 발길을 돌렸다. 이날 양측은 회동에서 이뤄진 대화 내용을 놓고도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등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김 후보는 "후보 간 담판, 여론조사 등 여러 가지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화 방식과 시한을 두 후보가 직접 정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한 후보는 "11일까지 단일화하지 못할 경우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이 결정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 후보는 "대선 후보인 내가 곧 당이다"라는 취지로 본인에게 당무우선권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 후보는 회동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단일화 방안을 말씀드렸는데 한 후보가 '아까 긴급 기자회견문 그대로다. 거기서 조금도 보태거나 더 진척할 것이 없다'는 말씀을 확고하고 반복적으로 계속하셨다"며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후보는 "11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단일화되는 거냐"고 한 후보에게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타깝다. 전혀 후보 등록 생각이 없는데 누가 끌어낸 거냐"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 후보 측 조용술 대변인은 "김 후보는 열어놓고 하나하나 말하려고 했는데 한 후보는 아까 말한 걸로 대체하겠다면서 대화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후보 측이 취재진에게 밝힌 사실관계는 김 후보 측이 전한 내용과는 크게 달랐다. 한덕수 캠프 관계자 일부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한 후보 측 이정현 대변인은 회동 후 서면 입장문을 통해 "김 후보는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한 후보에게 구체적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후보 등록 기한을 넘겨 투표용지 인쇄 기한까지 정치적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것은 국민에게 고통을 드리는 행동이며,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회동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11일이 지나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는 건 김 후보로 단일화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지적에 "그건 단일화를 깬 거다.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한덕수 캠프 측 관계자는 "우리 측은 어떤 방식이든 다 수용하겠다고 했다"며 "김 후보 측 설명이 궁색하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한 후보를 누가 (선거에)끌어냈냐'는 김 후보 발언에 대해서는 "김 후보가 후보 선출된 직후 바로 단일화 협상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 그래서 한 후보가 나온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두 후보가 첫 대면에서 평행선을 달리면서 불리해진 것은 한 후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가 '버티기 모드'를 계속하고 국민의힘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면 단일화 결렬 시 무소속으로 완주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한 후보는 스스로 출마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날 한 후보는 김 후보와 회동하기 1시간30분 전에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한 후보는 이 자리에서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며 "투표 용지 인쇄 직전까지 국민을 괴롭힐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미 단일화 방식에 대한 모든 결정을 국민의힘에 일임했다"며 "결정하고 바로 실행하면 된다"고 했다.
한 후보는 전날 단일화를 진행시키려는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 후보 간 '술래잡기'가 벌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런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 역시 김 후보를 쫓아 대구로 향하려 했지만 이를 취소한 바 있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고 주변에 "내가 나쁜 정치문화를 없애려고 출마했는데, 줄다리기 같은 걸 하겠나. 난 그런 정치문화를 답습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문수 캠프 측에서 회동이 시작되자마자 당 지도부가 이미 담판 결렬을 예상했다는 주장을 내놓자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김 후보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김재원 전 의원은 김 후보가 식당에 입장한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와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황우여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을 찾아가 '김 후보와 한 후보의 단일화 회담이 결렬될 것'이라며 내일부터 다시 후보 선거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며 지도부가 후보 교체에 착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와 당 지도부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이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강압적으로 절차를 강제하는 건 정당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며 "다른 방법을 강구해달라"고 중재에 나섰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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