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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소통 없는 카카오 혁신의 최후

  • 강영운
  • 기사입력:2025.10.01 17:54:09
  • 최종수정:2025-10-01 22: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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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아날로그적으로 살아간다. 밥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카카오톡 노란 창 위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쌓았다.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고, 친구들이 우정을 나누며, 가족 간의 유대를 다지는 공간이 카카오톡이었다. 0과 1로 나뉜 분절의 시스템인 디지털 세계에서도 인간은 끊기고 절단되지 않는 아날로그의 성을 만들어 나갔다. 카카오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업데이트가 대중의 분노를 부른 건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15년 동안 쌓아 온 추억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카카오톡은 카카오톡의 물성이, 인스타그램은 인스타그램의 물성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약간의 허영과 자기 과신의 공간이라면, 카카오톡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아늑한 장과 같았다. 카카오톡을 인스타그램처럼 바꾸려 했을 때 반발은 예상된 것이었다. 사람에겐 허영을 부릴 '파티장'도 필요하지만, 편안한 차림으로 대화를 나눌 공간도 필요하니까. 카카오톡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포기하자 "짝퉁 인스타그램"이란 말과 함께 별점 테러까지 이어졌다. 아늑한 공간을 빼앗기면 누구나 분노하기 마련이다.

혁신은 필요하지만, 혁명은 곤란하다.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려 했던 모든 기업은 대중의 반발에 직면했다. 세계적 의류 브랜드 '갭(GAP)'이 로고 변경을 발표한 건 2010년이었다. 수십 년 동안 유지된 파란 로고를 버리고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포부였다. 갭 경영진이 새 로고를 포기하는 데는 6일밖에 걸리지 았았다. 대중의 조롱, 경멸, 한탄, 아쉬움이 쏟아진 뒤였다. 우리가 알던 갭으로 돌려놓으라는 요구였다. 카카오톡이 이번 개편을 포기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같았다. 갭 경영진은 "우리가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놓친 것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그 과정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카카오톡의 사용자 수는 월평균 4930만명이다. 전 국민이 사용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다. 디지털 시스템은 지속적인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이용자의 편안한 일상이나 추억이 흔들리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카카오톡이 카카오톡다울 때 우리 일상의 안온함도 유지된다.

[강영운 디지털테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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