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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 자산 증식 막는 ‘함정’ 도처에 [서글픈 ‘K헨리·니콜라’ 자화상]

세금부터 주택 구매까지 이중삼중 ‘장벽’

  • 최창원
  • 기사입력:2025.10.01 21:00:00
  • 최종수정:2025-10-01 16: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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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부터 주택 구매까지 이중삼중 ‘장벽’

자본주의 핵심 원동력 중 하나는 계층 이동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높은 소득을 얻고 이를 기반으로 부(富)를 증식할 수 있다는 지위 역동성이 자본주의를 지탱한 기둥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지위 역동성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소득이 높지만 자산은 쌓이지 않는 ‘고소득 흙수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근로소득에 붙는 세 부담은 연봉 인상 속도를 훌쩍 앞지른다. 소득이 늘수록 각종 혜택에서 배제된다. 정부 규제로 내집마련도 쉽지 않다. 이중삼중 ‘구조적 장벽’이 계층 이동 사다리를 끊어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득은 높지만 자산은 쌓이지 않는 ‘고소득 흙수저’가 늘고 있다. 이들은 ‘구조적 장벽’이 계층 이동 사다리를 끊었다고 토로한다. 사진은 여의도 전경. (매경DB)
소득은 높지만 자산은 쌓이지 않는 ‘고소득 흙수저’가 늘고 있다. 이들은 ‘구조적 장벽’이 계층 이동 사다리를 끊었다고 토로한다. 사진은 여의도 전경. (매경DB)

함정 1 ‘유리지갑’ 울리는 과표

고소득 겨냥 ‘핀셋 증세’

올해 연봉으로 1억1000만원을 받는 백엔드 시스템(이용자 데이터 저장 시스템) 개발자 강 모 씨(39). 1인 가구인 강 씨의 경우 근로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등을 제한 월별 실수령액은 710만원 정도다. 강 씨는 처음 월급 명세서를 받은 뒤 당황스러웠다고 말한다. 강 씨는 “억대 연봉은 직장인의 꿈이기도 하고, 얼마 찍힐까 궁금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막상 보니 연봉 9000만원일 때와 비교해 월 100만원 정도 늘었더라. 물가 인상까지 고려해보면 실질임금은 월 100만원 인상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고소득 흙수저의 최대 불만 중 하나는 소득세다. 돈을 많이 벌수록 많이 내는 누진세 구조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표준(세금 부과시 기준 금액)은 8단계다. 연소득 8800만~1억5000만원 구간은 8800만원 초과 금액에 소득세율 35%를 적용한다. 직전 과세표준 구간보다 11%포인트 높다. 8단계 과세표준 중 가장 크게 소득세율이 뛴다. 통상 고소득자로 분류되는 대다수가 포함되는 구간이다. 고소득자 사이에서 연소득 8800만원이 ‘경계선’으로 불리는 이유다.

문제는 물가 반영이 전혀 안 된 경계선이란 점이다. 2008년 이후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1월 소비자물가지수(2020년=100 기준)는 79.4, 올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5.7이다. 약 45% 올랐다. 당시 8800만원은 현재 약 1억2000만원 가치와 비슷하다. 근로소득자 입장에서는 임금의 실질 가치가 줄었으므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과세표준 개편 필요성을 제기한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 4월 이를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근로소득세 증가 요인·시사점’ 보고서를 내고 “물가 상승률·실질소득 증가율·과세 부담이 근로 의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전문가들은 ‘세수 펑크’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총급여액 8000만원 초과 근로자는 전체 12.1%에 불과하다. 이들이 전체 근로소득세 76.4%를 부담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물가연동 세제 등 요구가 있었지만 모든 정부에서 반응하지 않았다”며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출이 크게 늘고 있는 상태라 과세표준 조정은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함정 2 사다리 걷어찬 6억 규제

‘현금 부자’ 금수저만 웃는다

“공부하고 노력해 전문직이 되고 소득을 늘리면 뭐합니까. 정부에서 ‘집값 안정화’ 정책이라며 대출을 막잖아요. 억대 연봉 부부가 서울에 번듯한 집 하나 못 구하고 전세 생활하는 게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인가요. 결국 운 좋게 잘 태어난 금수저만 웃는 겁니다.”

지난 6월 27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고 이사 계획을 접은 이 모 씨(37) 부부 얘기다. 이 씨 부부는 당초 출퇴근 편의를 고려해 20억원 안팎 마포구 아파트를 알아봤다. 30년 만기 9억원 대출이라는 자금 계획을 세우고 신청을 준비 중이었다. 비대면 주담대를 활용하면 3.8% 정도 금리가 예상됐다. 이 씨는 “계산해보면 원리금이 410만원 정도였다. 부담되는 수준인 건 맞지만 현금흐름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며 “영끌이라고 생각 안 해봤다”고 말했다. 임장을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던 중 정부 규제가 발표됐다. 정부는 ‘가계 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막았다. 결국 이 씨는 알아보던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주담대 규제가 커진 상황에서 웃는 건 금수저뿐이다. 이 씨처럼 소득은 높지만 자산이 부족한 이들은 이른바 ‘상급지’ 집을 사기 어렵다. 반면 ‘부모 찬스’로 현금 부자가 된 금수저는 규제와 무관하게 진입한다.

부동산R114 리서치랩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 말 기준 서울 강남구 평균 주담대 금액은 4억8362만원, 서초구는 4억6541만원, 용산구는 4억1038만원에 그쳤다. 강남권 수요자는 대출이 아닌 보유 현금으로 주택을 매입했다는 말이다.

대출 옥죄기가 ‘고소득 흙수저’ 자산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한국은행과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규제가 시행되면 고소득 저자산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본다. 그러면서 ‘노동 부자’ 대신 ‘자산 부자’에게 부가 대물림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석병훈 교수는 “고소득 저자산 계층은 자산을 축적해 고자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미래세대에게 자기 계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함정 3 ‘소득기준’ 허들 발목

고소득 부부 ‘합산소득 페널티’

대기업 직장인 김 모 씨(38)는 많은 소득세를 내면서도 주택 구매 때 실질적인 혜택을 전혀 못 받는 현실을 지적한다. 올해 연봉 9300만원인 그는 서울 시내 아파트 매매를 위해 저금리 대출을 알아보다 좌절했다. 예를 들어 주택도시기금에서 제공하는 저금리 구입자금대출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은 1인 가구(생애최초 구매자 기준) 연소득 7000만원이 소득기준 한도다. 만 39세 이하 대상인 ‘청년 주택드림 디딤돌 대출’도 연소득 7000만원으로 제한한다. 김 씨는 “상위 근로소득자로 높은 소득세를 내고 있지만, 정작 정부 지원은 일절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결혼을 해도 문제다. 합산소득 허들이 가로막는다. 저금리 구입자금대출 ‘신혼부부전용 구입자금’과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신혼부부 기준)’은 부부합산 연소득 8500만원 이하가 대상이다. 고소득 부부는 청약 시장에서도 페널티를 받는다. 지난해 청약 제도를 대폭 개편해 부부 중복 신청 시 부적격 조건을 해소하고 소득기준도 상향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민영 주택에 한해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 이하인 경우(맞벌이 120%) 우선 공급된다. 올해 적용 기준은 864만원(3인 가구 세전 기준)이다. 대기업 맞벌이 부부라면 이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160%(3인 가구 세전 기준 1152만원)까지 인정하는 신혼부부 일반공급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다만 이 역시 연차가 쌓인 대기업 부부라면 조건에 맞지 않을 확률이 높다. 고소득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다. 차라리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생애최초·무주택 우대 등 1인 가구로 받을 수 있는 청약에 각각 도전하는 게 유리한 선택지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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