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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하우스의 귀환...럭셔리 한옥 호텔 [스페셜리포트]

  • 나건웅,지유진,양유라
  • 기사입력:2025.10.01 21:00:00
  • 최종수정:2025-10-01 16: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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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윤관식 기자
사진 : 윤관식 기자

# 9월 24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청량리역에서 KTX를 1시간 남짓 타고 달리니, 어느새 충북 제천역에 닿았다. 역 광장 앞에는 대형 SUV 한 대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도 영월군에 최근 문을 연 초고급 한옥 호텔 ‘더한옥헤리티지’ 고객 픽업 서비스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굽이도는 동강 풍경을 즐기며 25분쯤 차를 몰고 나니 한적한 산골 속 한옥호텔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검푸른 기와와 웅장하게 뻗은 목재 기둥, 마치 종묘나 경복궁 같은 문화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호텔 내부 14개 객실로 구성된 1층 목조 건물로 들어서자 진하고 상쾌한 나무향이 온몸을 덮쳤다. 외부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내부에서 완성됐다. 전통 한옥 창 너머 강원 10경인 선돌 바위와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와집 지붕선과 담벼락, 쭉쭉 뻗어 있는 소나무와 경회루를 연상시키는 실외 수영장이 마치 액자 속 산수화를 꺼내놓은 듯했다. 긴 회랑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나무 바닥 결을 따라 부드럽게 퍼졌다. 호텔을 나와 독채로 향하는 산책로를 걸을 때는 마치 한옥마을이나 옛 서원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인테리어나 독특한 실내 소품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두터운 목재 기둥과 서까래가 주는 힘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간 한옥에서 볼 수 없던 높은 층고와 개방감, 깔끔한 서양식 화장실과 침대·테이블 같은 입식 가구는 의외성을 더했다. 실내 수영장, 대형 목재와 대리석으로 만든 아일랜드 식탁, 최고급 스피커를 장착한 음향시설까지. 전통 미학에 현대의 편리함이 고루 가미돼 있는데, 둘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레 조화를 이뤘다.

조남희 더한옥헤리티지 호텔운영 부문 부사장은 “기존 한옥이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전통에 현대 감각을 더했고 낯설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규모와 익숙치 않은 비례감을 구현했다”며 “단순 숙박을 넘어 다양한 전통 문화 체험을 아우르는 한국형 플랫폼이 목표”라고 말했다.

‘K-썸띵(K-something)’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를 넘어 온갖 한국 문화와 제품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최근엔 한옥, ‘K-하우스’도 어느덧 K열풍 반열에 합류하는 모습이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옥 숙박’은 새로운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대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비롯해 여러 인기 K드라마에 등장하는 궁궐과 기와집을 직접 보고 또 경험해보고 싶은 수요다.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관광객과 트렌드에 밝은 젊은 세대 사이에도 한옥이 역수출되는 중이다. 오래된 한옥이 주는 불편함을 현대 건축 기술로 재해석한 ‘럭셔리 한옥 스테이’ 브랜드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고택에서 명상을 통해 힐링하는 웰니스 프로그램도 20대 여성 중심으로 인기를 끈다.

강원 영월군에 문을 연 한옥 호텔 ‘더한옥헤리티지’ 내 독채에는 마치 ‘경회루’를 연상시키는 수영장도 있다. 이른 아침 자욱히 깔린 안개를 벗삼아 정자에 앉아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윤관식 기자)
강원 영월군에 문을 연 한옥 호텔 ‘더한옥헤리티지’ 내 독채에는 마치 ‘경회루’를 연상시키는 수영장도 있다. 이른 아침 자욱히 깔린 안개를 벗삼아 정자에 앉아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윤관식 기자)

“I LOVE 한옥”…글로벌 트렌드로

일본 ‘료칸’처럼, 한국 ‘한옥’을 찾다

한옥은 전통의 멋에 현대 편의를 더한 새로운 숙박 트렌드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유명 K-콘텐츠 속 명장면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한옥은 ‘힙’한 공간이 됐다.

한옥 인기는 최근 늘어난 국내 여행 수요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급등했는데, 서울 북촌과 익선동 한옥 스테이는 투숙률과 인근 카드 결제액이 크게 높아졌다.

수요를 포착한 글로벌 여행 플랫폼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에어비앤비는 지난해 ‘한옥’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최근 ‘K-공간’ 전략을 강화하는 중이다. 지리산 오두막, 제주 돌집과 함께 한옥은 전 세계 숙소 중 이용량 상위 10위권에 올랐다. 트립닷컴에서도 한옥 열풍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9월 20일까지 누적 기준 한옥 숙소 예약률은 전년 대비 377% 급증했다. 검색률 역시 지난해 동기보다 116% 늘었다. 지역별로는 전주(44%)와 경주(32%)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중국·싱가포르·러시아·미국 등 다양한 국적 관광객이 한옥을 즐겨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놀유니버스가 집계한 올해 9월(1~21일) 한옥 펜션 예약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했다. 한 글로벌 여행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회성 전통 문화나 민속 놀이 체험에 머물던 한옥이 이제는 숙박과 휴식, 관광을 겸한 ‘명품 공간’으로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행 업계 관계자는 “전통 미학 분위기를 살린 인테리어, 여기에 일반 펜션과 유사한 가격대에서 합리적 비용으로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늘었다”며 “기왕 한국에 들른 것, 기왕이면 한국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한옥에서 머물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니 일본 ‘료칸’이나 발리 ‘전통 빌라’에 꼭 하루쯤 묵어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더한옥헤리티지 호텔동 하이라이트는 나무 향이 짙게 풍기는 길다란 ‘회랑’이다. 오후 시간에는 창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회랑 가득 번져나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윤관식 기자)
더한옥헤리티지 호텔동 하이라이트는 나무 향이 짙게 풍기는 길다란 ‘회랑’이다. 오후 시간에는 창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회랑 가득 번져나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윤관식 기자)
한옥에서 ‘차경’은 창이나 마당을 통해 바깥 풍경을 내부 공간 일부로 끌어들이는 기법이다. 더한옥헤리티지 객실 창은, 산과 강은 물론 주변 한옥 풍경이 마치 액자 속 그림마냥 들어와 그대로 실내 풍경이 된다. (윤관식 기자)
한옥에서 ‘차경’은 창이나 마당을 통해 바깥 풍경을 내부 공간 일부로 끌어들이는 기법이다. 더한옥헤리티지 객실 창은, 산과 강은 물론 주변 한옥 풍경이 마치 액자 속 그림마냥 들어와 그대로 실내 풍경이 된다. (윤관식 기자)

럭셔리로 거듭난 한옥 브랜드

독채 1박 1000만원 한옥 호텔도

한옥도 이제 ‘럭셔리’ 시대다. 최고급 호텔 못잖은 ‘명품 한옥 브랜드’가 계속 등장하는 중이다. 요즘 럭셔리 한옥이 과거와 달라진 핵심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다. 기존 한옥의 불편한 점을 현대 기술이나 서비스로 보완해 접근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이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건 9월 초 정식으로 문을 연 강원 영월군 한옥 호텔 ‘더한옥헤리티지’다. IT 기업 코나아이가 무려 10만평 부지에 조성한 호텔로, 조정일 코나아이 회장이 사재 1000억원을 넘게 쏟아부어 13년 준비 끝에 선보인 초대형 프로젝트다.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종묘 정전을 모티브로 한 목조건물 호텔동은 연면적 1만2000㎡(약 3600평)에 달한다. 단일 목조건축물 중 세계 최대 규모인 종묘에 육박하는 크기다. 영월종택 휴·락과 선돌정 등 회원제 독채도 3동 있다.

독채 평균 면적은 200평 규모로, 일반 고객에게는 독채 1박에 1000만원 넘는 돈을 받을 만큼 최고급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 전체 호텔 부지 면적은 10만평이다.

호텔 오픈까지 13년이나 걸린 이유가 있다. 국내 그 어떤 장인도 이 정도로 대규모 한옥 공사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호텔 조성 전반에 직접 참여한 조 회장과 25명에 달하는 대목장이 함께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가며 완성해낸 노력의 결정체다. 부지 선정은 물론 시공과 인테리어, 심지어 나무로 만든 대부분 가구와 소품 제작까지 코나아이가 모두 직접 했다. 조남희 부사장은 “목조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무가 물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함수율’이다. 함수율이 높으면 시간이 지나며 나무가 쉽게 뒤틀려 건물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며 “건조 기간 단축을 위해 수년간 여러 실험을 거쳤고, 마이크로웨이브로 목재를 쪄내고 말리는 방식을 발견 채택했다. 문화재 복원에 투입되는 목재 함수율 기준이 25%인데, 더한옥헤리티지는 15%까지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함수율이 낮은 단단한 목재를 이용한 덕에 얻은 부가 효과도 있다. 나무가 뒤틀리고 팽창하는 과정에서 건물이 파손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과거에는 틈새마다 진흙을 채워 각 부분을 결합하는 ‘습식 공법’을 썼다. 하지만 더한옥헤리티지는 전에 없던 ‘건식 공법’으로 한옥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는 진흙을 채워 넣었던 공간에 대신 에어컨·공기청정기 등 현대 가전을 숨길 수 있게 됐다. 완벽한 냉난방을 자랑하면서도, 고객이 한옥의 멋을 해치는 현대 문물(?)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비결이기도 하다.

문화 콘텐츠 경험에도 차별성을 뒀다. 도포와 한복을 입고 도슨트 투어를 즐길 수 있고, 누각에선 국악과 함께 주안상을 맛본다. 밤에는 별빛을 감상하는 천문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단순 숙박을 넘어 ‘전통 문화 플랫폼’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더한옥헤리티지 목표다. 높은 품질은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2024년 베르사유 건축상 호텔 부문 세계 1위, IIDA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지방에서만 프리미엄 한옥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 북촌에 거점을 둔 럭셔리 한옥 호텔 브랜드 ‘노스텔지어(Nostalgia)’는 전통 한옥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해 운영 중이다. 하이엔드를 표방하는 브랜드로, 현재 블루재·히든재 등 총 6개의 독채 한옥을 갖추고 있다. 2026년에는 아크재 개관도 앞뒀다.

숙소마다 뚜렷한 콘셉트가 인상적이다. 남향으로 남산타워를 조망할 수 있는 청기와 대형 한옥 ‘블루재’, 동굴을 품고 있어 프러포즈와 이벤트를 하기 좋은 ‘히든재’, 전통을 재해석한 공예 작가와 작품을 인테리어로 배치한 ‘힐로재’ 등이다. 최근 윤현상재와 협업으로 선보인 ‘더블재’는 서까래와 대들보 등 전통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옻칠한 한지와 제주 흙 옹기 타일, 토종 볏짚 등 한국 미감을 풍성하게 전달하는 재료가 공간을 가득 채워 호평받았다.

운영 방식에도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다. 신라호텔 출신 지배인을 영입해 VVIP 응대를 정교화하고 ‘웰컴센터’를 마련, 직접 대면 체크인을 지원한다. 해외 고객 반응도 폭발적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방영 이후 외국인 관광객 예약이 폭증, 현재 투숙객 80% 이상이 외국인이다. 지난해 프랑스 여행 큐레이션 플랫폼 ‘Staays’에 블루재가 국내 최초로 등재됐다. 올해 6월엔 동북아 최초로 ‘에어비앤비 럭스(Airbnb Luxe)’에 공식 등재되며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노스텔지어 관계자는 “한옥은 과거 불편한 좌식·무침대 이미지로 소비되곤 했지만, 노스텔지어는 웰컴센터 응대와 다국어 서비스를 통해 프리미엄 대접을 받는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수공예 체험과 비치된 작품들이 한국의 미감을 고감도로 전달하면서 해외 고객이 열광하는 새로운 럭셔리 카테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는 약 50채 프리미엄 한옥을 입점해놓은 한옥 스테이 전문 플랫폼 ‘버틀러리’가 유명하다. 지난해 예약 건수만 1만1000건, 이용객은 2만7000명에 달했다.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버틀러리는 단순 중개를 넘어 위탁 운영도 병행한다. 오래 방치된 한옥을 고쳐 현대적 시설과 트렌디한 공간 디자인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직접 운영이 어려운 한옥 소유주와 협력해 체계적으로 관리에 나서는 중이다.

현재 버틀러리 이용객 70% 이상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미국·유럽은 물론 중화권과 일본까지 국적도 다양하다.

하루 평균 가격은 30만~40만원대. 웬만한 호텔 가격이지만 예약은 치열하다. 버틀러리를 운영하는 이동우 프라우들리 대표는 “한옥에서 하룻밤을 한국 여행 하이라이트로 꼽는 외국인이 많다. 북촌 ‘청감각’ 같은 프리미엄 숙소는 몇 달 전부터 예약이 마감될 정도”라며 “최근엔 도심 속 ‘옥캉스’를 즐기고자 하는 젊은 세대도 늘어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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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에서도 고즈넉한 프리미엄 한옥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한옥 브랜드 ‘산온(사진 위)’은 경기 양평과 경북 안동 등지에서 한옥 숙소 4채를 운영 중이다. 전북 남원에 위치한 ‘명지각 1956(사진 아래)’은 하이엔드 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숙소다. (산온, 스테이폴리오 제공)
지방 소도시에서도 고즈넉한 프리미엄 한옥 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한옥 브랜드 ‘산온(사진 위)’은 경기 양평과 경북 안동 등지에서 한옥 숙소 4채를 운영 중이다. 전북 남원에 위치한 ‘명지각 1956(사진 아래)’은 하이엔드 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숙소다. (산온, 스테이폴리오 제공)

독채에서 즐기는 다도와 명상

키워드는 ‘프라이버시’와 ‘체험’

한옥스테이 트렌드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프라이버시’와 ‘체험’이다. 하이엔드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유명한 ‘스테이폴리오’에 따르면, 독립된 공간이 확보된 소규모·독채형 한옥, 그리고 정원 산책·사우나·다도 등을 즐길 수 있는 체류형 체험 한옥 상품에서 고객 반응이 좋다.

스테이폴리오 입점 한옥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전남 남원 ‘명지각 1956’, 그리고 서울 서촌 ‘한옥에세이 누하’ 역시 프라이버시와 체험을 고루 갖춘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명지각은 1950년대 고택을 도시재생과 연계해 리뉴얼한 공간이다. 사랑채는 체크인 공간, 별채는 프라이빗 사우나로 쓰인다. 전통 중정 구조와 단열 보완으로 정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잡았다. 한옥에세이 누하는 서촌에 위치한 도심 속 독채다. 전통 구조에 모던 키친과 욕실을 더해 생활 편의를 높였다.

스테이폴리오 관계자는 “두 공간 공통점은 독채 구조, 그리고 감성적인 동선 설계”라며 “고객은 단순히 예쁜 공간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외부와 단절된 한옥과 정원에서 조용히 사유하고 전통 회랑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양평과 경북 안동에서는 4개 한옥 스테이를 운영하는 ‘산온’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비슷하다. 산온은 200평 규모 독채를 한 팀이 전부 쓰는 구조로 사적 공간과 그 속에서 즐기는 여유를 특히 중시한다.

운영 4년 만에 누적 객실 가동률이 86%에 달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높은 재방문율 덕에 양평 3채, 안동 1채로 확장했고 현재는 서울 소형 호텔도 준비 중이다.

김민철 산온 대표는 “침구와 어메니티, 책과 식기까지 계절마다 교체해 공간 전체를 무대로 연출한다. 투숙객은 툇마루에 앉아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며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 숙소 안에서만 머물러도 힐링할 수 있는 이유를 계속 발굴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8월 운영을 시작한 경북 영주 ‘사유의정원’ 역시 힐링과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 인스타그램 14만 폴로어를 보유한 인기 웰니스(신체·정신적 건강) 강사 차소연 대표가 400년된 고택에서 명상·필라테스·아로마테라피 등을 콘텐츠로 ‘한옥 힐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년 전, 영주 종가집 종손인 남편과 결혼한 한 대표가 지역 소멸을 막고 영주를 더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했다. 시작한 지 두 달 정도로 프로그램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약 때면 금세 자리가 찬다. 2030대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차소연 대표는 “고택인 만큼 많이 낡고 어딘가 깨져 있는 부분도 있지만 부족한 그대로를 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위로를 얻으시는 듯하다”며 “인원은 일부러 소규모로 잡고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주로 갖는다. 한옥 고택에서 고즈넉한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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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들리가 운영 중인 ‘버틀러리’는 서울 북촌 일대 한옥 약 50채가 입점한 프리미엄 한옥 전문 플랫폼이다. 사진 위에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스테이 ‘바람숨’, 사진 아래는 자하문로에 있는 ‘도현당’. (프라우들리 제공)
프라우들리가 운영 중인 ‘버틀러리’는 서울 북촌 일대 한옥 약 50채가 입점한 프리미엄 한옥 전문 플랫폼이다. 사진 위에는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스테이 ‘바람숨’, 사진 아래는 자하문로에 있는 ‘도현당’. (프라우들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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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한옥, 더 대중화되려면

불편 없애고 장인 생태계 키워야

K-하우스 인기는 이제 막 시작이다. 다른 K-썸띵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트렌드 안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통의 멋은 살리되 생활 불편은 줄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예쁘지만 불편한 곳’에서 ‘아름답고 편안한 한옥’으로 진화다. 실제 버틀러리와 스테이폴리오 등 플랫폼에 입점한 인기 한옥 대부분은 이중창·모던 키친·프라이빗 사우나 등 현대 편의시설을 갖췄다. 냉난방·단열·욕실 같은 기본 인프라는 호텔 수준으로 보완돼야 글로벌 대중화에 다가설 수 있다.

조남희 부사장은 “오랜 기간 고객이 한옥을 찾지 않게 된 이유는 불편함 때문이다.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전통 방식만 고수하지 않고 현대 기술을 가미해 고객이 한옥을 더 많이 찾게 되면, 오히려 우리 한옥 문화가 롱런하고 뛰어난 장인들도 일자리를 계속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 품질 관리를 위한 한옥 생태계 조성 필요성도 제기된다. 강영구 서울시립대 교수는 “인기에 편승해 막 급조된 한옥 건축물은 관리 소홀로 오히려 흉물이 될 수 있다”며 “한옥을 지을 수 있는 장인과 자재, 시공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탈리아 명품 산업처럼 자재-장인-브랜드를 잇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 맥락과 어울리는 공간 기획도 뒷받침되면 좋다. 일본 료칸이나 발리 풀빌라는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 자연과 마을, 도시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있다. 한옥도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이는 것이 아니라 도시 스카이라인과 거리 분위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 사회와 상생 문제도 중요하다. 단독 한옥이 기존 시가지에 들어설 경우 젠트리피케이션과 주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처럼 ‘마을 단위’로 형성될 경우 전통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관광 수요 충족이 가능하다.

법·제도 정비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현행법상 한옥 숙소에 적용 가능한 업종만 해도 ‘한옥체험업’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농어촌민박’ ‘생활숙박시설’, ‘숙박업’ 등 다양하다. 각 업종마다 적용 법률이나 허가·건축 조건, 영업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숙소를 짓거나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한 숙박 업계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다른 법 해석이 혼란을 키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은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에서 독채 운영을 허용하지만, 다른 지역은 불허하거나 사전 협의가 필요하기도 하다”며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법 제도 정비가 병행된다면 한옥의 인기가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지유진·양유라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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