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약달러 반갑다…정유·항공·유통 ‘희색’ [弱달러, 韓 산업에 미치는 영향]

자본 조달 리스크…조선·철강은 ‘난색’

  • 나건웅
  • 기사입력:2025.05.30 13:27:46
  • 최종수정:2025.05.30 13:27:46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자본 조달 리스크…조선·철강은 ‘난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견고했던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중이다. 그가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과 연이은 약달러 유도 발언, 여기에 미국 정부 재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며 달러 가치와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 중이다.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건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여파다. 최근 글로벌 통화 패권 변화로 국내 산업과 기업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또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을지 파악해야 할 시점이다.

셀 아메리카…국내 지표는

원화 강세·채권 불안·물가 안정

국내 산업이 받을 영향을 살피기 위해서는 환율·금리·물가 등 핵심 거시 지표 전망이 우선돼야 한다. 여기에는 ‘고차방정식’이 필요하다. 워낙 다양한 변수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거진 ‘탈달러화’ 이슈에 보다 초점을 맞출 경우, 환율·금리·물가에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먼저,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다. 글로벌 달러 회피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통화 가치 절상 압박이 커지는 중이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하락이 예상된다. 채권 시장 금리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국채 가격 하락은 물론 일본·독일·영국 등 선진국 채권 금리도 덩달아 뛰는 추세다. 우리나라 국채 금리 역시 미국과 여타 선진국 채권 금리에 동조 경향이 강하다.

물가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여지가 많다. 달러 약세로 수입 물가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와 소비 심리 자체도 살아날 수 있다. 달러 약세·원화 강세로 금리 인하 여력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0.2%를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데 따른 조치다. 한은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은 0.8%로, 지난 2월 전망치(1.5%)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원화 강세에 울고 웃는 기업

제조·중공업 ‘흐림’…정유·항공 ‘방긋’

달러 패권 불안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 ▲채권 금리 상승에 따른 자본 시장 불안 ▲물가 하락과 내수 안정 가능성 등이다. 이에 따라 수혜 기대 업종과 피해 우려 기업이 나뉜다.

먼저 환율 변동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수출 중심 제조업’이다. 달러로 표시된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서다. 글로벌 제품 가격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자동차, 가전 같은 산업이 대표적이다.

해외 수주 잔고가 많은 조선·중공업 기업도 불리하다. 달러 기반 계약 비중이 높아 실제 환산 수익 감소 가능성이 커진다. 해외 서비스 매출을 달러로 받는 주요 IT·소프트웨어 기업도 실질적인 매출 감소 현상이 발생한다.

물론 원화 강세로 모든 수출 기업이 피해를 보는 건 아니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크다면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 해외 수입 원자재를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원가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요 원자재 수입이 많은 석유화학 업종, 밀·식용유 등 주요 원재료 가격 하락이 전망되는 식품 업종이 그렇다.

특히 SK이노베이션·GS칼텍스 같은 정유 업종 기업은 더욱 반갑다. 보통 국제유가는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인다.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는 만큼,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 수요가 증가하면서 유가가 오르는 구조다. 최근엔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이례적인 하락세를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으로 경기 둔화가 예상되며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서다. 올해 초 80달러 선이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4월 57달러까지 떨어지며 4년 만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항공·여행도 원화 강세 수혜주다. 해외여행 비용이 저렴해지면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호재는 또 있다. 항공은 항공권 판매 증가뿐 아니라 국제유가 하락으로 유류 비용 감소 효과가 기대된다. 하나투어·모두투어 같은 여행사는 이미 판매한 패키지 매출에는 변화가 없지만, 숙소·교통비·가이드비 등 현지에 지불해야 할 지상비 감소로 수익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내수 소비 중심 유통·소매업도 전망이 나쁘지 않다. 수입 물가 하락으로 소비자 실질 구매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브랜드 상품 수입 가격 하락에 따른 마진 개선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백화점과 해외 의류·뷰티 유통 기업도 비슷하다. 다만 이는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갈 때 얘기다. 경기 침체를 맞게 되면 모두 공염불이다.

사진설명

자본 시장 불안에 떠는 부실 기업

내수·물가 안정…유통·소매업 볕들까

업종을 불문하고 ‘재무 부실 기업’은 최근 셀 아메리카 분위기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달러 신뢰 저하→미국 국채 금리 상승→한국 국고채 금리 동조 상승→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흐름 탓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자산인 국고채 대비 더 높은 수익률을 안겨줘야 회사채를 팔 수 있다.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가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데,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자본 조달 비용이 늘어나 부담이 커진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해서다.

실제 국내 채권 금리는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2.563%였던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5월 28일 기준 2.719%까지 올랐다. 회사채 무보증 3년물 역시 같은 기간 2.868%에서 2.913%까지 상승했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부담이 더 크다. 외부 자금 비중이 큰 만큼 내야 할 이자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500대 기업(금융사 등 제외한 353곳) 평균 부채비율은 103.7%로 전년(102.9%) 대비 소폭 상승했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효성화학을 비롯해 한성자동차(2320%), 티웨이항공(1799%), 아시아나항공(1241%) 등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기업은 경고등이 켜졌다. 부채비율 500%가 넘는 재무 부실 기업도 16곳이나 된다.

업종으로 따지면 조선·기계·설비(15.5%p), 운송(10.5%p), 철강(10%p), 석유화학(5.7%p) 등이 전년 대비 부채비율이 늘었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133.3%p), LIG넥스원(132.4%p) 등 부채비율이 100%포인트 이상 급등한 기업도 비용 부담에 직면하게 됐다.

자본 조달이 어려워진 요즘, 이자보상배율도 눈여겨봐야 할 지표 중 하나다.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지출한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개념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으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뜻이 된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라고 해도 이자보상배율 역시 높다면, 이자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 만큼 당장 부실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석유화학이 특히 불안하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대비 지난해 이자보상배율 하락률(94%)이 가장 높은 업종이 석유화학이다. 2021년 12.3에서 지난해 0.6까지 떨어지며 1을 밑돌게 됐다. 여타 업종 상황은 낫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철강(15.7→2.3), 건설·건자재(8.1→1.6), 제약(40.3→8.3), 식음료(19.2→4.7) 역시 이자보상배율 1을 웃돌긴 하지만 하락률이 높아 안심할 수 없다. 반면 3년 전보다 이자보상배율이 오른 업종은 조선·공기업·보험 등이다.

달러 패권 약화, 한국 대응

적극적인 ‘환헤지’…재무 건전성↑

전문가들은 달러 패권 약화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의 경우, 경영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환율 리스크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달러 약세가 예상되는 만큼 업종을 불문하고 적극적인 ‘환헤지’가 중요해졌다. 환헤지란 환율 변화에 따른 자산 가격 변동을 대비해, 계약 시점 환율로 고정해놓는 전략을 의미한다. 선물환 계약이나 통화 스왑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활용해 환차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같은 업종에 속해 있지만 환헤지 전략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일도 생긴다. 예를 들어 ‘조선 빅3’ 중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웃을 가능성이 높다. 100% 환헤지 전략을 쓰는 삼성중공업과 달리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환헤지 비율이 70% 안팎이다. 조선은 배 한 척에 수천억원 규모 대금을 달러로 지급받는 일이 흔하다. 동일한 대금을 받았다고 해도,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경우 삼성중공업 영업이익이 훨씬 커지는 구조다.

재무 안정성 제고도 시급하다. 향후 이자 비용 오름세에 대비해 부채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 비핵심 자산을 선제 처분하고 자본 조달 수단도 다변화하는 편이 좋다. 특히 채권 시장 불안이 예상되는 요즘, 장기 차입보다는 머니마켓펀드(MMF)나 기업어음(CP) 등 단기 금융상품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정부 차원 조치도 필요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특성상 원화 강세가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수출 경쟁국 통화 대비 원화 절상폭과 속도를 정부에서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원화 절상을 압박하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필요시 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단기 환율 변동성 확대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일본을 비롯해 아세안 국가 협력을 통해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해봄직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미루 KDI 국채연구팀장
끝나지 않을 관세 전쟁…달러 의존 낮춰야
美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전 포괄적연금통계위원회 자문위원/ 국가통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 KDI 국채연구팀장 [KDI 제공]
美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전 포괄적연금통계위원회 자문위원/ 국가통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 KDI 국채연구팀장 [KDI 제공]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낮췄다. 국책 연구기관 중 처음으로 0%대 경제성장률을 예고했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발 관세 정책에 따른 통상 여건이 수출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란 분석이다. 김미루 KDI 국채연구팀장은 “이럴 때일수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Q. 미국 국채 가격 하락과 달러 약세 등 금융 환경이 급변한다. 국내 산업·기업 영향은.

A. 미국 관세 정책이 글로벌 거시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한국 반도체 업종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통상 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은 한국의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산업별로는 컴퓨터, 전자, 광학기기 등 투자와 밀접하게 연관된 업종에서 충격이 두드러진다.

Q. 미국 달러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정부와 기업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나.

A. 미국 국채 발행 규모는 중장기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미국 국채 시장에 대한 신뢰도 역시 점차 약화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기업과 정부의 즉각적인 대응 필요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 만약 향후 달러 패권 약화가 보다 명확한 흐름으로 전개되면, 정부는 외환 보유고 내에서 위안화, 유로화 등의 비중을 현재보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Q. 원화 강세 수혜와 피해 예상 업종은.

A. 원화 강세는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에는 부정적이다. 정유, 전력·가스, 그리고 수입품 유통 업체 등은 원화 강세 시 원자재·제품의 해외 조달 비용이 감소해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는다. 반면 반도체, IT, 자동차, 조선업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원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Q. 국채 금리 상승 여파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A. 국채 금리 상승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며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 다만, 해당 경제 주체가 순채권자인지(자금을 빌려주는 입장) 아니면 순채무자인지(자금을 빌리는 입장)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린다. 일례로 항공업, 중소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업처럼 레버리지가 높은 산업은 금리 상승으로 인한 차입 비용 부담이 커지며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Q. 트럼프 정부 ‘관세 전쟁’ 결말을 어떻게 예상하는지.

A.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가운데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지지 기반이 되는 계층에게 고용 창출 등 다소간의 이익이 될 만한 측면이 있어 관세 전쟁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진 않다. 조동현 기자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