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 심리 둔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2.3% 상승에 그쳤다. 다우존스 전문가 전망치(2.4%)를 밑돌았다. 상승률만 놓고 보면 2021년 2월(1.7%)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 수요는 여전하다. 이 덕분에 관련 기업 주가도 상승세가 이어진다. 대표적인 크루즈 기업인 로얄캐리비안크루즈(RCL) 주가는 5월 28일 기준 250달러를 기록 중이다. 지난 4월 글로벌 불확실성과 함께 미국 내 소비 심리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177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크루즈 여행 수요가 눈으로 확인되자 반등한 것. 시장에선 추가적인 상승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의 로빈 팔리(Robin Farley)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리포트에서 RCL 목표주가를 311달러로 제시했다. 기존 301달러에서 3.3% 상향 조정했다.

여행은 줄지만 크루즈는 예외
얼마 쓸지 예상 가능해 선호↑
미국인 여행 수요는 올해 크게 줄었다. 미국 개인 금융 컨설팅 전문 업체 뱅크레이트의 여름 여행 수요 조사에 따르면 올해 여행을 계획 중인 미국인은 응답자의 46%를 기록했다. 지난해 53%와 비교해 7%포인트 감소했다. 뱅크레이트는 치솟는 물가를 이유로 꼽았다. 실제 여행을 안 가겠다고 답한 응답자 중 68%는 생활비 부담으로 휴가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로이터통신은 올해 미국인 1900만명이 크루즈 휴가를 보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1820만명)와 비교해 오히려 4.5% 증가했다. RCL도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큰 폭의 여행 수요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이슨 리버티 RCL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예약 마감(close in bookings) 결과를 확인했다”며 “지난해 1분기를 초과하는 예약 실적을 냈고 역사상 최고의 웨이브 시즌(Wave season)을 보냈다”고 말했다. 웨이브 시즌은 매년 1월부터 3월 사이 진행되는 크루즈 예약 프로모션 시즌을 말한다.
크루즈 여행 수요 증가를 두고 증권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먼저 항공 여행 등과 비교해 지출 규모가 예상 가능해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항공의 경우 여행지에 도착한 뒤 쓸 돈을 예상하는 게 쉽지 않다. 반면 크루즈는 숙박과 식사, 엔터테인먼트 비용이 티켓 가격에 포함돼 쓸 돈이 정해져 있다. 이승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크루즈 여행은 숙박과 식사 같은 여행비용이 티켓 가격에 모두 포함돼 있다”며 “여행객 입장에선 예산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시기처럼 불확실성 우려가 크고 재정적 리스크가 커지는 시기에 크루즈 여행이 선호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팁(Tip) 비용도 예약 과정에서 모두 낼 수 있다. RCL은 ‘Tip-tip hooray’ 옵션을 제공한다. 여행 기간 동안 팁을 미리 지불하는 형태다.
아이러니하게도 증권가가 꼽는 또 다른 요인은 가격이다. 크루즈 여행은 여전히 ‘럭셔리 여행’에 속한다. 하지만 ① 다양한 여행지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 ② 모든 비용이 포함됐다는 점 ③ 중저가 크루즈가 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지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5월 24일 기준 미국 시애틀에서 출발해 알래스카 일대와 캐나다 서부(브리티시컬럼비아) 등을 지나는 RCL의 7박 상품(17만톤·일반 숙소)은 1인당 800~900달러(약 100만~120만원) 수준이다. 미국 투자 전문 매체 시킹알파는 “미국에서 크루즈 여행 붐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여행지를 한 번에 다닐 수 있다는 크루즈만의 가치와 편리함 때문”이라며 “또 젊은 층을 겨냥한 엔터테인먼트가 늘고 있어 크루즈 이용 연령층도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킹알파에 따르면 크루즈 여행 평균 연령대는 2019년 66세에서 2024년 55세로 젊어졌다. 이승연 애널리스트도 “크루즈 산업 데이터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경험을 중시하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증명한다”면서 “육상 기반 여행과 달리 크루즈는 다양한 목적지를 한 번에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공격적 투자로 존재감↑
사유지 개발 차별화
미국 증시에 상장한 크루즈 기업은 또 있다. RCL 외에도 카니발(CCL), 노르웨이지안크루즈라인(NCLH)이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점유율만 놓고 보면 카니발(41.5%)이 1위다. RCL은 27%로 2위다. 그런데 시장에선 RCL을 가장 주목한다. RCL의 지난해 연간 주가 상승률은 92.9%. 반면 CCL과 NCLH는 각각 44.1%, 40.4%에 그쳤다.
RCL의 차별화 포인트는 공격적인 투자다. NCLH는 7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크루즈 ‘Icon of the Seas’를 앞세워 대형 크루즈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에 더해 2030년까지 비슷한 규모의 초대형 크루즈를 3척 이상 도입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2025년 8월 ‘Star of the Seas’가 운항 예정이고 2026년 7월 ‘Legend of the Seas’ 항해가 계획된 상태다. 2027년 4번째 선박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김승혁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RCL은 대형 크루즈 관련 계획을 잘 수립해나가는 반면 CCL과 NCLH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면서 “NCLH는 2030~2036년 초대형 크루즈 도입 계획인 만큼 타임라인이 늦고 카니발은 상대적으로 작은 크루즈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며 “CCL이 활용하는 ‘Excel-class’ 선박은 RCL의 ‘Icon-class’ 대비 약 27%가 작아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승혁 애널리스트는 “적어도 2030년까지는 RCL이 대형 크루즈 산업을 독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격적인 투자는 사유지 개발 부문에서도 드러난다. RCL은 최근 항해 루트에 있는 섬을 사들였다. RCL 이용객만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사유지를 개발해 항해 루트에 포함시켜 록인(Lock-in) 효과를 강화하려는 의도다. 대표적인 게 Perfect Day at CocoCay 포함 상품이다. RCL이 바하마에 있는 섬 한 곳을 사들인 뒤 15만평 규모 워터파크와 프라이빗 해변 등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 일부 기구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하지만 대부분 무료로 이용 가능해 수요가 상당하다. RCL은 사유지 개발 전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증권가도 이를 눈여겨보는 눈치다. 이승연 애널리스트는 “바하마에 개장 예정인 비치클럽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를 통해 선상 소비 확대 등에 따른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며 “2026년부터는 Perfect Day Mexico 상품 등을 통해 지역을 넓혀나갈 계획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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