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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가성비 경영 분석해보니 [스페셜리포트]

  • 나건웅,조동현
  • 기사입력:2025.05.14 09:03:56
  • 최종수정:2025.05.14 09: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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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가성비 경영 분석해보니

패션 ‘공동 발주’, 외식 ‘공동 구매’

이랜드그룹 사업이 승승장구 중인 비결은 역시 ‘가성비’에 있다. 흔히 가성비 시장은 ‘수익성이 안 좋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하지만 최근 이랜드 주요 사업 실적을 보면, 매출 성장은 물론 영업이익 역시 더 큰 폭으로 늘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조건 가격 인하’를 넘어선 그룹 내 원가 절감 역량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이랜드가 가성비 경영을 안착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패션 부문은 ‘대물량 공동 발주’가 핵심이다. 스파오와 미쏘 등 이랜드가 보유한 수많은 패션 브랜드를 해외 생산 공장에 한 번에 발주한다. 뉴발란스도 신발을 제외한 의류는 90% 이상 이랜드가 직접 디자인·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랜드 생산 역량을 인정한 글로벌 본사에서 패션 부분은 아예 일임했다.

또 해외 생산 공장이 1년 내내 생산 타임라인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해 공임비를 낮췄다. 봉제 공장은 1년 중 한 시즌에 봉제가 집중돼 안정적인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이랜드는 연 단위 대물량을 맡기고, 분기 또는 월별로 고르게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게 발주·납기 계획을 원팀으로 세팅, 공장 걱정을 덜어주면서 가격 협상력을 챙겼다.

자체 생산도 강점이다. 국내 유통사 중 해외에 자체 의류 생산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은 이랜드가 유일하다. 이랜드는 2009년 베트남 국영 기업 ‘탕콤’을 인수했다. 생산기지 확장은 물론 글로벌 패션 사업 거점으로 삼기 위한 의도다. 인도에도 자체 생산 공장을 보유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는 베트남·미얀마 등 생산 공장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며 “특히 스파오 MD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푸퍼 프로젝트 원팀’은 2024년 해외 생산 공장을 5차례 방문하는 등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재고 관리도 비용 절감 비결 중 하나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어려운 패션 업계에서는 재고 비용이 늘 골칫거리다. 쌓인 재고 탓에 이월 제품을 대폭 할인하거나 이른바 ‘떨이’로 털어내는 판매 방식은 기업 수익을 낮추는 요인이다.

이랜드 SPA 브랜드 핵심 경쟁력은 이른바 ‘2일·5일 생산’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2022년 서울 답십리에 문을 연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에서는 일단 50~200장 소량 상품을 ‘2일’ 만에 생산해 시장 반응을 테스트한다. 결과를 토대로 베트남 생산기지에서 ‘5일’ 만에 대량 생산을 완료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흔히 6개월 또는 1년 뒤 상품을 미리 기획하는 기존 업계 방식과 달리,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2일에서 5일 이내에 상품을 생산해 시장에 선보인다. 팔릴 만큼만 생산해 재고를 줄이는 취지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 패션 사업 내부 핵심 성과 지표 중 하나가 ‘정판율’이다. 제품을 정상가로 판매한 비율을 뜻한다”며 “정판율을 높이기 위해 애초부터 가격을 최대한 낮게 설정하고 재고 관리도 엄격히 한다. 이랜드 SPA 브랜드에서 유독 이월 제품 할인 프로모션이 많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리테일이 지난 2023년 말 론칭한 유통형 SPA 브랜드 ‘NC베이직’도 이랜드 가성비 경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NC베이직은 전체 상품 약 80%를 3만원대 이하로 구성했을 정도로 가성비에 집중한 브랜드다. 비결은 판매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지속 가능한 원가 구조를 역으로 만드는 ‘가격 역설계’ 전략이다. 기존 소매 유통 업체가 매입 원가에 특정 비율 마진을 한 번에 붙여 판매하는 것과는 차별화된다. NC베이직은 지난해 테스트 매장으로만 1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애슐리퀸즈는 최근 2년 동안 매장을 50개 가까이 늘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사진은 애슐리퀸즈 잠실롯데캐슬점. (이랜드 제공)
애슐리퀸즈는 최근 2년 동안 매장을 50개 가까이 늘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사진은 애슐리퀸즈 잠실롯데캐슬점. (이랜드 제공)

외식과 유통 사업도 비용 절감에 성공했다.

애슐리는 통합 작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냈다. 그간 애슐리 클래식, 애슐리 더블유 등 가격대별로 구분·운영해오던 일반 매장을 프리미엄 매장인 ‘애슐리퀸즈’로 통합하면서다. 각기 다른 메뉴를 취급하던 매장을 하나로 합치면서 메뉴별 취급량이 늘었고 식자재 운영 효율이 대폭 올랐다.

‘공동 생산’과 ‘공동 유통’도 눈길을 끈다. 애슐리퀸즈 생산은 ‘센트럴키친’이 도맡는다. 이곳에서 생산한 조리·반조리 상태 식품을 애슐리퀸즈를 비롯해 이랜드가 운영 중인 여타 브랜드 매장에 일괄 공급해 원가를 낮췄다. 현재 센트럴키친은 경기 광주(축산), 용인(야채), 성남(베이커리), 주안(소스·델리상품) 4곳을 운영 중이다.

구매도 마찬가지다. 이랜드이츠 각 브랜드는 식자재 유통 자회사 ‘이랜드팜앤푸드’에서 원재료를 공동 구매를 통해 원부재료 비용을 줄였다. 이랜드팜앤푸드는 이랜드킴스클럽 신선식품 유통을 담당하는 회사. 취급하는 품목과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원가 절감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이랜드팜앤푸드는 벤더나 도매상 등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산지 농가와 직계약해 중간 유통 마진을 절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판매하는 ‘홍가리비’는 통상 7단계 유통 과정을 거친다. 양식장 → 1차 가공장 → 경매 등 중간 유통 → 2차 가공장 → 도매 → 소매 → 소비자다. 하지만 이랜드는 중간 유통 4단계(양식장 → 1·2차 가공장 → 소매 → 소비자)로 단순화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계약 재배로 농가와 협력해 농사를 짓거나 아예 직접 가축을 키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진주 딸기는 농가와 계약 재배로 생산 물량을 전량 매입했고 제주 감귤은 감귤밭 10만평을 임대해 이랜드가 직접 재배 후 사들이는 식이다. 모두 중간 유통 과정을 최소화해 마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와인도 출시 예정일보다 1년 앞서 와이너리와 계약을 맺는다. 연간 판매 계획을 먼저 세운 후에,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고 있는 와이너리를 미리 방문한다. 상품화 전 대물량 발주로 원가 협상력 발휘를 위해서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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