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K-바이오가 또 하나의 잭팟을 터트렸다.
바이오 벤처 에이비엘바이오는 글로벌 제약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최대 4조1000억원(20억7500만파운드) 규모로 뇌 전달 플랫폼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2020년 글로벌 빅파마인 사노피에 1조5000억원 규모로 파킨슨병 치료제 ‘ABL301’을 기술 이전한 지 3년 만의 초대형 계약이다. 또한 2020년 알테오젠이 미국 머크와 체결한 4조6700억원대 기술 이전에 이은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번 기술 이전은 신약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후보물질)이 아닌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 빅파마를 사로잡은 기술은 뇌혈관장벽(Blood-Brain Barrier·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Grabody-B)’다. GSK는 이 기술을 토대로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에이비엘바이오가 받는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기술료)은 1480억원이다. 기술 이전 발표로 주가는 폭등했다. 지난 4월 7일 공시 이후 상한가 행진을 달렸고, 지난 4월 3일 3만1300원이었던 주가는 4월 22일 최고 7만900원까지 뛰었다. 2조원에 못 미치던 시가총액은 단숨에 3조3000억원대를 넘어섰다.

알테오젠 이후 최대 규모 계약
뇌혈관장벽 침투 돕는 기술
그랩바디-B는 약물이 뇌의 뇌혈관장벽(BBB)을 잘 침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BBB는 유해한 물질의 뇌 유입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반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있어선 약물이 통과하지 못해 큰 장애물로 여겨왔다. 그랩바디-B는 BBB를 통과하기 어려운 기존 약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 수용체(IGF1R·Insulin-like growth factor 1 receptor)’를 통해 약물이 BBB를 효과적으로 통과하고, 뇌로 전달될 수 있도록 이끈다. IGF1R은 뇌에 영양분을 직접 공급하는 일종의 수송 통로다.
구체적인 방식은 이렇다. ‘알파 시누클레인(뇌세포 사이 신경전달을 돕는 단백질)’ 등의 항체에 ‘그랩바디-B’를 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중항체는 뇌 내피세포 표면에 발현된 IGF1R과 결합해 BBB를 통과한다. BBB를 투과한 이중항체는 퇴행성 뇌질환의 발병 원인을 공격해 질병을 치료한다.
아울러 BBB 셔틀이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 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발생을 낮출 것으로 기대한다. ARIA는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혈관벽이 손상돼 나타난다. 주요 증상은 뇌출혈, 뇌부종이다.
발생 이유는 이렇다. ‘항-아밀로이드’ 항체 같은 단일항체는 뇌척수액(CSF·CerebroSpinal Fluid)이 뇌로 전달되는 경로를 주로 이용하며 뇌 안으로 이동한다. 뇌 안의 큰 혈관 옆 부분으로 CSF가 흐른다. 단일항체들은 해당 경로로 이동하며 BBB보다 느슨한 혈액-CSF 장벽을 통해 뇌 안으로 침투한다. 업계에서는 큰 혈관들에 붙은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체를 단일항체가 공격해 혈관에 상처가 생기며 출혈이 발생한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ARIA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추측이다. 에이비엘바이오 측은 비임상실험을 통해 “혈액-CSF(뇌척수액) 장벽이 아니라 BBB를 통해 항체를 통과시키는 방식이 ARIA 발생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또한 그랩바디-B가 로슈가 선보인 ‘트랜스페린 수용체(TfR·Transferrin receptor)’ 기반 플랫폼 대비 안전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2023년 로슈는 TfR 기반의 BBB 셔틀이 적용된 알츠하이머 치료제 ‘트론티네맙’ 초기 임상 데이터를 발표한 바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원숭이에 TfR 셔틀 이중항체와 그랩바디-B 이중항체를 각각 투여한 뒤 30여일 동안의 혈액 세포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TfR 셔틀 이중항체를 투여받은 원숭이에서 경미한 수준이지만 분명한 ‘적혈구 감소(빈혈)’가 나타났다. 안정성 측면에서 그랩바디-B가 경쟁력 있다는 의미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BBB 셔틀 플랫폼은 뇌질환 치료 신약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향상된 효능을 인정받았다”며 “새로운 기대주”라고 밝혔다.

미국서 신약 개발한 이상훈 대표
“그랩바디-B 추가 기술 이전 가능”
창업주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UCSF에서 포닥(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이후 아스트라제네카와 제넨텍, 엑셀레시스 등 다국적 제약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신약 개발 경험을 쌓았다. 유학 시절 인연으로 2009년 유진산 파멥신 대표와 파멥신을 공동으로 창업하며 항체 기술을 연구했다.
신약을 직접 개발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그는 파멥신을 나와 대기업을 선택했다. 이 대표는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에 연구소장으로 입사했다. 회사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회사가 바이오사업부를 정리하며 신약 개발의 꿈을 접을 뻔했다.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창업에 나섰다. 당시 14명의 석박사급 연구 인력들과 함께 이중항체 기술 하나를 토대로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이중항체 바이오 기업 에이비엘바이오가 탄생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GSK는 그랩바디-B를 항체를 넘어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 siRNA, ASO 등 다양한 모달리티(약물전달방식)에 적용해나갈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GSK의 퇴행성 뇌질환 포트폴리오 내 그랩바디-B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훈 대표는 “그동안 BBB 셔틀과 관련해 항체 부분에서만 계약을 해왔다”며 “미국 회사와 모달리티 확장에 관해 지속적으로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고 듀얼 BBB 셔틀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증권가에서는 그랩바디-B의 추가적인 기술 이전 성과를 기대한다. 김준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GSK와의 계약에서 살펴볼 포인트는 그랩바디-B의 확장성”이라며 “이번 GSK와의 계약에서 에이비엘바이오가 가장 잘한 부분은 아밀로이드 베타(Aβ)와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을 표적으로 하는 데 대한 권리를 배제한 점”이라고 말했다.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은 알츠하이머 질환의 주요 바이오마커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달리는 알테오젠 역시 의약품 제형 변경 플랫폼 기술을 표적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전하며 주가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상훈 대표는 “항체, 메신저 리보핵산(mRNA), 항체·약물 접합체(ADC) 등 다양한 모달리티로 그랩바디-B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아밀로이드 베타, p-타우 등 타깃을 세분화해 기술 이전 기회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그랩바디-B 같은 플랫폼 기술뿐 아니라 파킨슨병 치료제 ‘ABL301’, 담도암 치료제 ‘ABL001’, 면역항암제 ‘ABL111’ ‘ABL503’,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다수의 파이프라인 포트폴리오를 보유 중이다. 지난 4월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진행 중인 이중항체 ‘토베시미그(ABL001)’의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의 첫 환자 투여가 진행됐다. 이번 연구자 임상은 토베시미그의 담도암 환자 대상 1차 치료제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성 담도암을 진단받은 환자 약 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토베시미그는 현재의 담도암 표준 1차 치료 요법인 젬시타빈, 시스플라틴, 듀발루맙과 병용 투여된다. 연구 주요 목표는 6개월 무진행생존률(PFS), 병용요법의 안전성 및 내약성 평가 등이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한 토베시미그는 신생혈관의 생성과 종양 내 혈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DLL4 및 VEGF-A 신호 전달 경로를 동시에 차단하는 이중항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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