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재해·재난 대응 3조2000억원 △통상·인공지능(AI) 지원 4조4000억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 4조3000억원 등 총 12조2000억원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의 핵심 키워드는 '필수'와 '민생'이다. 정부는 신속한 집행이 가능한 93개 사업을 '필수 추경' 대상으로 삼았다. 경기 진작을 위한 돈 풀기 목적이 아니라 시급하게 다뤄야 할 과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번 필수 추경은 산불 피해 등 재해·재난 대응, 통상·AI 경쟁력 강화, 민생 회복·안정이라는 우리 경제의 시급한 현안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추경으로 기대되는 성장률 제고 효과는 0.1%포인트로, 가시적인 경기 반등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추경 사업은 영세 자영업자나 관세 피해 기업 등 특정 분야에 집중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이다. 정부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소상공인 약 311만명을 대상으로 전기료·건강보험료 등 공과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크레디트' 방식의 지원을 도입한다. 1인당 최대 50만원이 지급되며, 전체 예산은 약 1조6000억원이다. 평균 영업비용의 절반 수준을 지원함으로써 고정비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신용(4~7등급) 자영업자 약 7만명에게는 6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한 1000만원 한도의 전용 신용카드를 발급한다. 마이너스 통장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금융 부담을 덜 수 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융자도 8000억원 증액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단일 사업에 집중된 방식이 아닌, 크레디트·정책자금·무이자 카드 등 다양한 수단을 묶은 패키지형 지원을 통해 현장의 수요를 세밀하게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상생페이백' 제도도 추진된다. 대형마트·백화점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연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전년보다 늘어난 경우, 증가분의 2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준다. 환급액은 월 최대 10만원, 연간 30만원으로 관련 예산은 1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월평균 카드 사용액이 100만원이고 올해 200만원을 썼다면 100만원이 증가한 셈이다. 이 중 20%인 20만원이 환급 대상이지만, 한도 때문에 실제로는 10만원만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받게 된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추세 속에서 자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사업도 추경에 담겼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해 총 25조원의 정책자금을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고에서 1조5000억원을 출자·출연한다. 관세 대응을 위한 바우처 제도 신설(1000억원), 핵심 광물의 조기 비축과 국내 생산 기반 구축(2000억원)도 함께 추진된다.
재정 1000억원을 투입해 고용 충격에 선제 대응한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대상 인원을 확대한다. 추후 고용위기지역 8곳을 추가 지정할 예정이다. 또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1조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AI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스트럭처 1만장 연내 확보와 함께 AI 정예팀을 통해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세계적 수준으로 키우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추경으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는 것은 고민거리다. 세계잉여금과 기금 자체 자금 등 가용 재원이 4조1000억원에 불과해 8조1000억원을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한다. 정부 가계부 격인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폭은 기존보다 10조9000억원 증가한 84조7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2.8%에서 3.2%로 상향 조정되면서 기존 재정준칙 한도(3%)를 초과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기존 48.1%에서 48.5%로 상승한다. 일각에서는 6월 대선 이후 2차 추경 가능성까지 열려 있어 정부의 정책 여력이 조기에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복되는 국채 발행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차관은 "신용등급은 중장기 건전성 전망을 중심으로 평가된다"며 "현재 수준의 국가 재정 상황으로는 신용등급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과감한 소비 진작 예산이 필요한데 12조원짜리 찔끔 추경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밝혔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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