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당시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지지로 개인전이 열렸고, 예상과 달리 김 화백의 출품작은 '완판'되면서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됐다. 현대화랑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창열 회고전을 열 당시에도 도록 제작에 필요한 김 화백의 작품 사진과 관련 자료, 비용 등을 일체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대화랑의 개관 5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2부가 오는 7월 6일까지 갤러리현대 본관(현대화랑)과 신관 전관에 걸쳐 개최된다. 본관에서는 현대화랑이 일찍이 발굴·후원했던 추상미술 작가 22인의 대표작 40여 점을 펼친다. 여기에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김창열, 김환기, 유영국, 이우환 등 거장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신관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 볼 수 있는 작가 18인의 대표작 5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의 출품작은 모두 현대화랑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나 기업, 개인 컬렉터에게 판매됐던 작품들 가운데 각 작가의 대표적인 수작을 엄선한 것이다. 권영숙 갤러리현대 이사는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은 기획전 등을 통해 종종 대중에 공개될 기회가 있었지만, 개인 컬렉터 분들이 소장한 작품은 수십 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특히 작가들의 초기작은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희귀작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당대 일본에서도 가장 진보적이었던 미술 단체에서 활동하며 추상미술 외길을 걸었던 유영국 화백의 희귀작 3점도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 다시 만난다. 김환기 화백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를 이끌었던 유 화백 역시 현대화랑의 1975년 개인전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고향 울진의 산, 바다 등 자연 풍경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대신 강렬한 색채와 선과 면, 삼각형 같은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와 공간 분할로 재해석했다. 자연의 숭고함과 한국적인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여정을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연대기 순으로 펼친다. 이 가운데 한글과 한자에서 영감을 받은 문자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 이응노와 남관, 수학적인 기하 추상을 개척한 한묵, 천경자 다음의 여성 화가로 주목받은 이성자, 김창열 화백은 모두 프랑스 미술계와 적극 교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성자 화백에 대해 박 회장은 "1965년 서울에서 개최된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들을 처음 보자마자 추상회화의 힘을 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현대화랑은 1974년 이성자 개인전을 열었고, 이는 그의 추상 회화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전시는 1세대 추상미술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1940년 전후 출생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어진다. 하종현과 김기린, 이우환, 존배, 권영우, 유희영, 정창섭, 이승조, 신문섭 등이다. 철학적 의미를 담은 단색화와 추상화로 회화를 다차원적인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이우환의 대작 'Dialogue'(2007)를 비롯해 선으로 분할된 화면에 팝아트적 색채로 매끈한 화면을 만든 유희영 화백의 '작품 2018-R(B)', 원고지 위에 시를 쓰듯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단색화를 완성한 김기린 화백의 1990년대 작품 '안과 밖' 등이 전시됐다.
한편 갤러리현대 신관은 2세대 화랑주인 도형태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갤러리 프로그램에 관여하며 함께하게 된 1950년대~1980년대생 작가들의 컨템퍼러리 작품을 선보인다. 회화, 미디어아트,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채워졌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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