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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셀트리온 | ① 나는 매 순간 벼랑 끝에서 절박함으로 버텼다

  • 손현덕
  • 기사입력:2025.06.04 13:47:46
  • 최종수정:2025.06.04 13: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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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脫殼)의 순간들>
성공한 기업들은 보면 결코 우연이란 건 없습니다. 운이 따랐다 한들 그 운을 기회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껍질을 벗듯, 탈각(脫殼) 이전의 기업과 이후의 기업은 전혀 다릅니다. 담대한 변신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끈 기업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사진 류준희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그건 우리 직원들이 실패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만든 약입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에 대해 화제가 옮겨지자 의자를 당기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편하게 웃음 짓던 얼굴이 엄숙하게 변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2013년 5월 30일이었다. 셀트리온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가 사실상 유럽 승인을 받은 날이다. 정확하게는 유럽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를 상대로 최종 대면 면접(OE;Oral Explanation)이 있던 날. 이 관문을 통과해야 미국의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 해당하는 유럽 의약품청인 EMA(European Medicines Agency)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약은 못 판다. 유럽에 약을 팔려면 EMA가, 미국에 약을 팔려면 FDA가 승인을 해줘야 한다. 이날 현장을 지켰던 이수영 신약연구본부장(당시 램시마 프로젝트 리더)의 증언.

램시마
램시마

“런던 시간으로 오후 5시경이었습니다. 한국은 새벽 2시 정도 됐으니까요. 그 운명의 시간 말이죠. 우리 팀이 금융 중심가인 카나리워프에 있는 EMA 본부에 도착한 것은 오전. 약속 시간보다 꽤나 일찍 갔습니다. EU에 가입한 27개국에서 의약 전문가 각각 2명씩 총 54명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저는 자리가 부족해 다른 방에서 지켜보면서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안에서는 질문이 나오면 바로바로 대답해야 하는데 밖에서 실시간으로 관련 자료를 화면에 띄워줘야 합니다. 예행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심사위원들 간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기독교 신자인 저는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약 1시간 대기했는데 1주일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는 발표장 옆으로 우리를 오라고 했는데 거기 대표로 보이는 4명만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온 심사관의 발언. 통과였습니다. 그게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였습니다.”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프로젝트를 사실상 총괄했던 기우성 부회장(당시 부사장)은 서정진 회장에게 전화를 건다. 그 시간서 회장은 인천 송도에 있는 호텔 방을 잡아놓고 거기서 보고를 받고 진두지휘를 했다. 약 30명의 직원과 함께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외부 약속은 대부분 취소하고 램시마에만 집중했다. 너무나도 버거운 일들이 닥친 데다가 회사의 운명이 걸린 일이어서 모든 걸 뒤로 미뤄놨다. 영국에서 전화로 첫 소식을 받은 건 서 회장의 비서였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더니 목이 메 우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울지 말라’고. 떨어졌으면 다시 하면 되지 뭐. 이렇게 태연한 척했죠. 그랬더니 여직원이 울먹이면서 하는 말이 승인받았다는 거였습니다.”

전화를 건네받았다. 기 부회장이 통과됐다고 보고를 했다. 뭔가 말할 게 많았던 것 같은데 그냥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나 지나 기 부회장에게 한 말은 “수고했다”는 한마디. 그리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마음껏 먹고 쉬라고 격려했다.

일 해결되려면 내가 감옥 가야 하는 거야

발표가 있기 전날 밤, 그러니까 영국에서는 면접에 들어가기 직전, 서 회장은 기 부회장과 통화를 했다. 그 때 기 부회장은 “이번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걸 책임지고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서 회장은 “나중에 들어보니 허가 못 받으면 그 친구, 죽으려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램시마는 셀트리온 직원들이 실패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만든 약이라고 한 것이다. 기 부회장에게 물어봤다. “정말 죽을 작정이었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습니다. 램시마 판매 허가를 한국에서 받은 건 2012년 7월입니다. 한국에서는 약을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유럽, 더 나아가 미국의 승인을 못 받으면 시장이 한국에만 국한되고 결국은 신뢰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승인받지 못한 약을 판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조차 제대로 팔리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한국서 승인을 받자마자 세계 의료계를 상대로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52개 국가에 램시마 허가 신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첫 단추가 유럽이었습니다. 한국 식약처의 허가는 단순한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EMA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던 도중에 램시마 임상 3상의 분석법이 잘못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지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면역분석법 과정에서 데이터 추출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서 회장이 쉽게 풀어준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의 글로벌 임상을 마치고 2012년 처음으로 한국 식약처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유럽에서 허가받기 1년 전이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의 글로벌 임상을 마치고 2012년 처음으로 한국 식약처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유럽에서 허가받기 1년 전이었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효능 안전성이 같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램시마와 오리지널인 레미케이드의 동등성을 입증하기 위해 50여 가지 분석법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임상 샘플 분석 과정에서 분석 지점을 두 곳이 아닌 세 곳으로 하라고 EMA가 지적한 것인데, 사실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요. 그래도 EMA의 룰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더욱 힘이 없었습니다. 셀트리온은 의료계에선 변방의 작은 기업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EMA로부터 퇴짜를 받으면 회사는 그날로 문 닫을지 모릅니다.”

서 회장은 나중에 기 부회장으로부터 죽을 각오였다는 얘길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업가라는 건 자기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일을 밀어붙여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야.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이익 나면 성공했다는 얘기 듣는 거고, 아니면 사기꾼 되는 거야.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지. 그래서 사업은 절박한 마음이 없으면 못 해. 항상 벼랑 끝에서 절박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거야. 당신이 약 먹고 죽는다고 일이 해결되냐. 일이 해결되려면 내가 감옥 가야 하는 거야. 내가 검찰 불려 가 조사받고 벌받아야 끝나.”

서 회장은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내린다. 16만 건의 데이터를 재분석하기로 결정한다. 통상 6개월이 소요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제때 승인을 받는 건 물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 회장이 기 부회장에게 버럭 화를 냈다. “어떻게든 해보라”고. 급기야 기 부회장이 아이디어를 낸다. “6개월이란 것이 하루 8시간 근무를 전제로 한 것 아닙니까. 하루 24시간 일하면 2개월로 줄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EMA 제출 마감 시한을 맞출 수 있습니다”라고. 그게 기 부회장의 ‘24시간 플랜’이었다. 그도 절박함을 깨달았는가 보다. 돌격대장다운 행동이었다.

램시마SC
램시마SC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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