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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성황당 숲과 미술관이 있는 원주 여행

봄날의 미술관을 걸어보셨나요 뮤지엄산부터 성황당 숲까지

  • 최갑수(여행작가)
  • 기사입력:2025.06.04 03:32:16
  • 최종수정:2025-06-04 03: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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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미술관을 걸어보셨나요
뮤지엄산부터 성황당 숲까지

봄날, 미술관이 궁금해 후다닥 차를 몰았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니 금방 원주였다. 뮤지엄 산에 가서 그림도 보고, 성황당 숲에 가 숲길도 걸었다. 봄은 짧으니 하고 싶은 걸 하자. 찰나의 여행, 봄을 더 깊고 길게 즐기는 방법이다.

성황당 전나무 숲길
성황당 전나무 숲길

며칠 전 주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하고 놀았다. 자주 가는 빵집에 가서 빵을 샀고, 오는 길에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중국집에 가 짜장면도 먹었다. 오후에는 연어샐러드를 만들어 와인을 마시며 야구를 보았다. 이틀 연속 낮잠도 잤다. 간만에 푹 잔 것 같았다. 덕분에 뭉친 어깨가 조금은 풀렸다. 내가 30년 가까이 여행을 하며 깨달은 유일한 두 가지 진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모두가 작가로 태어나지만, 계속 글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가 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삶은 여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정은 한 번도 예상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들 중 단 하나도 내가 예상했던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얼른 해치우고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간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그래도 인생은 별 탈 없이 굴러간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가장 먼 미래는 ‘올 겨울에 치앙마이에 다시 가서 보름 정도 놀다 와야지’ 하는 것이다.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뮤지엄 산의 랜드마크인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
뮤지엄 산의 랜드마크인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

‘날씨가 곧 더워질 모양이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벌써 더워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반바지를 입고 있다. 이러다가 갑자기 여름이 온다. 나이가 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이 반갑지만, 가차 없이 가는 계절이 마냥 아쉽기도 하다. 내게 몇 번의 봄이 남았나 하며 짧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짧은 봄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원주에는 ‘뮤지엄 산’(Museum SAN)이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미술관인데, 전시관이라기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인생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 도서관에 가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 앞에 서는 것이라 믿고 있다. 뭐, 그래서 원주로 차를 몰았다.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의 강렬한 예술 체험

안도 타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다. 그는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 물 등 자연 요소를 끌어들인 독창적인 방식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위)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 ‘아크웨이’ (아래) 뮤지엄 산 미술관
(위)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 ‘아크웨이’ (아래) 뮤지엄 산 미술관

뮤지엄 산은 안도 타다오가 무려 8년에 걸쳐 지은 건물이다. 해발 275미터의 산 위에 자리하며 입구부터 관람 거리가 2.5킬로미터가량 이어진다. 걸어서 돌아보는 데 약 2시간이 걸린다. 웰컴센터에서 출발해 플라워가든과 워터가든, 뮤지엄 본관을 지나 명상관과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진다. 하나하나의 영역을 거쳐 가며 미술관 건물과 건물 속의 전시를 감상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제일 먼저 반기는 작품은 마크 디 수베로의 ‘For gerald manley hopkins’라는 작품이다. 플라워가든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높이 15미터의 붉은색 구조물로 바람이 불면 윗부분이 움직인다.

플라워가든을 지나면 36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는 자작나무숲이 나온다.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워터가든과 뮤지엄 본관이 동시에 나타난다. 워터가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난 길 위에 붉은 조각 작품이 있다. 알렉산더 리버만의 1998년 작품 ‘아크웨이’(Archway)다. 비스듬히 절단한 붉은 원기둥이 얼기설기 얽혀 아치를 이룬다.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본관은 경기도 파주에서 실어 온 파주석을 이용해 가지런하게 쌓아 올렸는데, 수면 위에 은은하게 반영을 이룬다. 수변 공간을 거울처럼 활용하는 안도 타다오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본관은 건축가의 의도를 조금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일단 내부에는 형광등과 같은 직접 조명이 전혀 없다. 바닥에 희미한 무드등 같은 간접 조명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혀 어둡지 않다. 이는 천장을 따라 길게 난 슬릿 창을 통해 자연의 빛을 최대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맑은 날은 밝게, 흐린 날은 조금 어둡게 조도가 달라진다. 내부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건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도 유심히 보자. 타일의 줄무늬 같은 선들은 천장과 벽면을 지나 바닥까지 끊어지지 않고 한 줄로 이어지는데, 안도 타다오가 얼마나 섬세한 곳까지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제지 사업으로 잘 알려진 한솔그룹의 한솔문화재단이 만든 뮤지엄답게, 본관은 크게 페이퍼갤러리와 청조갤러리로 나뉜다. 페이퍼갤러리에선 종이의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뮤지엄산의 야외 카페
뮤지엄산의 야외 카페

청조갤러리에서는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공간이다. 청조갤러리 앞에는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Communication Tower)가 서 있다. TV 모니터를 쌓아 올린 높이 5.2미터의 작품이다.

본관을 나서면 스톤가든이 등장한다.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만든 동그란 반원의 스톤마운드 9개가 고요히 서 있다. 16만 개의 귀래석과 4만 8,000개의 사고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톤 마운드 사이로 부드럽게 휘어지며 길이 나 있는데 길 중간중간 조각 작품들이 기다린다. 그리고 안도 타다오와 여러 차례 협업한 바 있는 제임스 터렐의 상설관이 있다. 터렐은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설치 미술가다. 그는 건물을 캔버스 삼아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 전시실에는 그의 작품이 총 4점 있는데, 한 장소에서 그 작품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해외에서도 흔치 않다.

뮤지엄 산 전시장
뮤지엄 산 전시장

숲은 온대 낙엽활엽수림으로 중부지방 자연림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지정 규모는 5만 4,314제곱미터. 졸참나무, 느릅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찰피나무 등이 자라고 복수초, 꿩의 바람, 윤판나물 등 100여 종의 초본류도 자란다. 성황당 옆에 자라는 전나무는 이 숲에서 유일하게 자라는 침엽수다. 수령은 400여 년쯤으로 짐작되는데 정확한 수령은 모른다고 한다.

높이는 29미터, 가슴높이 지름은 1.3미터에 달하는 고목이다. 이 숲에 꼭 한 번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숲길을 따라 걸어가 명상체험을 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이 숲이 주는 감동과 울림은 크고 깊다. 숲을 나와서도 숲의 초록과 불어오는 바람의 일렁임이 신의 움직임과 숨소리처럼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만 같다.

성황당 숲에서 만난 나무의 금줄
성황당 숲에서 만난 나무의 금줄

아이들과 함께라면 원지 행구수변공원에 자리한 원주 기후변화홍보관으로 가보자.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로 이산화탄소 줄이는 법도 배우고, 환경에 도움되는 운전법이 어떤 건지도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4D영화를 통해서는 북극과 남극의 기후변화를 펭귄과 북극곰의 모험을 통해 알 수 있도록 했다. 에코백 색칠놀이도 할 수 있다.

여행도 인생도 가볍게 가볍게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빌 에반스와 조성진, 루이 암스트롱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들었다. ‘What a Wonderful World’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듣다가 ‘참 아재스러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LP로 음악을 듣고 싶다는 마음도 굴뚝처럼 높게 솟았다가, ‘그럼 안 되지. 턴테이블을 사게 되면 또 LP를 모으게 될 것 같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기후변화홍보관
기후변화홍보관

이젠 뭔가를 사는 게 싫다. 그냥 가볍고 가뿐하게 살고 싶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약간의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오히려 편하다. 사랑? 그것도 글쎄다.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한 적도 있었지만, 그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내게 필요한 건 사랑보다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소파다.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2014년형 프라이드인데,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아주 잘 데려다 준다. 와인도 2만 원대면 충분하다. 주말에 보틀숍에 가서 소비뇽 블랑과 피노 누아를 사온다.

성황당 숲을 산책하는 사람들
성황당 숲을 산책하는 사람들

스톤 가든의 전시물들
스톤 가든의 전시물들

가끔 저작권료나 인세 등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오면 조금 비싼 와인을 사기도 한다. 삼겹살 같은 걸 먹고 싶은 날에는 친한 후배를 불러낸다. 잔소리를 하며 술을 마시는데, ‘내가 돈을 내니까 이 정도 잔소리는 괜찮겠지 뭐’ 하고 생각해버린다. 그래도 전화를 하면 바로 튀어 나오니 내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딱히 취미는 없다. 골프를 치지도 등산이나 낚시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말에 소소한 중국집 정도 찾아다니는 게 전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는 참 재미없는 인간 같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봄이 가고 있는데, 미술관도 가고 숲길도 걸었더니만 마음이 좀 나아졌다. 집에 가서 차 대놓고 가까운 중국집에 가 잡채밥이나 시켜놓고 낮술이나 마실까? 가는 봄 즐기는 데 낮술도 어찌 좋지 아니할까.

원주 여행 정보
(위에서 부터) 고판화박물관, 고판화박물관의 전시물, 고판화박물관에서는 판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카페 빨간지붕의 도마
(위에서 부터) 고판화박물관, 고판화박물관의 전시물, 고판화박물관에서는 판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카페 빨간지붕의 도마

신림면 황둔리 명주사에 위치한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은 한국과 일본, 중국, 티베트, 몽골, 인도, 네팔 등지의 고판화 6,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고판화 원판 1,800여 점, 고판화 작품 300여 점, 목판으로 인쇄된 서책 200여 점과 관련 자료 200여 점 등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궁중 판화, 문중 판화, 능화 판화 등도 직접 볼 수 있다. 황둔마을은 전통 제조방식으로 찐빵을 만드는 찐빵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각 빵집마다 특징이 있어 어느 집이 입맛에 맞을지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사진설명

카페 빨간지붕은 성황당 숲 초입에 자리한 예쁜 카페다. 성황당 숲 체험을 마치고 여운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커피와 각종 음료를 파는데 제철 과일로 직접 만든 음료가 특히 맛있다. 카페 안에는 주인이 직접 만든 도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직접 구입 할 수 있다. 야외에서 햇살을 즐기며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민박도 겸하고 있으니 미리 예약을 하고 하룻밤 묵어보는 것도 좋을 듯. 직접 기른 재료로 만든 밥과 국, 나물로 차려진 ‘텃밭 밥상’도 맛볼 수 있다.

[글과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0호(25.05.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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